노래에는 사연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노래와, 노래의 이야기

by 강주피

노래에는 사연이 담긴다. 노래는 사연을 만든다.


음악에 잠시 미쳤던 때가 있었다. ‘미쳤다'라고 해도 그리 대단하지는 않지만. 2013년, 나는 내가 대학에 입학하면 이제 공부는 안 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어폰 넘어 즐겨 듣던 수많은 인디 밴드들의 삶을 지켜보며, 나는 그들처럼 살고 싶었다. 그래서 일단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꿈꿔온 명문 대학에 입학한 뒤 그 타이틀이 또 다른 매력점이 될 수 있기를 바랐다. 나는 ‘내 음악’을 할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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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입학한 뒤, 5년이 채 되지 않는 역사를 가진 과 밴드에 지원했다. 오디션을 보던 날, 정말 긴장했다. 5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고 노래도 곧잘 부른다는 칭찬을 들어왔지만 연습생 지원은 처음이었으니까. 신촌의 밴드 합주실로 향했다. 크고 작은 방이 펼쳐진 지하 한 구석에서 나는 내 차례를 기다렸다. 지정곡과 자유곡, 두 곡을 불러야 했다. 지정곡은 윤하의 ‘오디션’. 다소 1차원적인 선곡일 수는 있지만, 노래 부르는 사람의 힘을 가늠하기에는 적절한 선곡이라 여겼다. 자유곡으로는 인생에서 가장 많이 들었다고 자부할 수 있는 린의 ‘통화연결음'을 선택했다. 노래방에서 줄곧 불러왔기에 나름 자신도 있었다.


다행히 나는 보컬 포지션에 합격했다. 물론 그 기회는 내 실력이 얼마나 평범한지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10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두 곡의 노래를 부르며 나는 내 목소리가 여느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리스너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는 걸 알아챘다. 그래서 그 이후 2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정말 즐겁게, 그리고 혹독하게, 밴드 생활을 했어도 전업 음악인이 된다는 생각은 더 이상 키우지 않게 되었다.


같은 밴드에는 나와 동갑이지만 현역으로 들어와 선배인 한 친구가 있었다.준수한 외모와 그가 쓴 감투, 풍류를 즐기는 태도와 모든 이들의 로망인 CCC(Campus Class Couple, 학과 캠퍼스 커플)까지 겸하던 그는 인기가 많았다. 사실 외모가 준수하다 못해 잘생겼었는데, 그 시절 유명했던 페이스북 페이지 ‘대신 전달해드립니다'를 통해 학과를 넘어 학교 안, 그리고 학교를 넘어서도 그를 찾는 학생들이 줄지었다. 나와는 다른 세계의 삶을 살고 있었다.



2014년 여름, 학과에서 하는 국토대장정에 참가했다. 사실 국토대장정이라고 해도 양평쯤 되는 곳까지 버스를 타고 간 뒤 거기서 서울로 다시 걸어오는-소박하지만 또 쉽지 않은-그런 활동이었다. 여섯, 일곱 명 정도의 작은 팀이 꾸려졌고 나도 참가했다. 아마 새로운 경험에 대한 갈망이 있었던 것 같다. 많은 장면이 기억나지는 않는다. 그렇게 힘든 강도가 아니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님 생각보다 재미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뼛 속까지 내향형임에도 외향형인 척 속고 있던 그때, 2박 3일이라는 시간 동안 남들과 부대끼며 지내는 게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래도 딱 한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양평에서 한강으로 이어지는 자전거길이었다. 초록이 가득했고, 나는 배낭 하나를 짊어진 채 동료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걷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그 친구와 나란히 걷게 되었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때, 친구는 무심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자신의 아버지가 속세를 떠나 종교에 귀의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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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지 않은 척했다. 정확히는 그 말의 무게를 가늠하기가 어려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몇 년이 지나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보며 한 사람의 하지 않은 말이 남은 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해석을 남기는지 눈치챘지만. 그때는 헤어짐 그 자체에 당황했다. 역시나 능숙하지 못한 나는, 많은 질문을 뒤로한 채 대화를 이어나갔다. 혹시나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된다면 묻고 싶다. 그때 왜 그런 이야기를 꺼냈냐고.


내가 알던 녀석과는 달리, 그는 ‘속’이라는 것이 길이를 잴 수 있다면 한 무릎쯤에서 시작하는 깊이를 가지고 있었다. 평상시보다는 한 톤 낮은 목소리로, 그러나 여전히 유쾌함을 간직한 채, 그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아무래도 같은 밴드에 속했으니 밴드와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기억에 남는 두 문장.


노래에는 그런 힘이 있는 것 같지 않아?
시간을 되돌려주는 힘.


사실 특정 노래와 상황을 연결 지어 듣는 타입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해하는 척했다. 내게 노래는 그저 노래일 뿐이었다. 제대로 된 이별 경험도 없지만 린의 ‘통화연결음'에 꽂혔으니 그냥 그 노래만 한 곡 반복해온 나였다. 그런데 그는 말했다. 특정 시간과 공간으로 자기를 돌려놓는 노래가 있다고. 어떤 노래를 들으면, 그 노래를 듣던 시점의 나와 그때 자기의 감정이 생각난다고. 그때 처음 알아챘던 것 같다. 노래에는 사연이 담긴다. 그리고 노래는 사연을 만든다.


그런 노래와, 노래의 이야기를 기록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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