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프레쉬 Mar 08. 2020

워킹맘에서 풀타임 맘으로의 그 때

드디어, 브런치에 글을 쓰다.

'머리로만 에세이를 쓴 여자'라고 프롤로그에 스스로를 소개한 작가 노지양. <<먹고사는 게 전부가 아닌 날도 있어서>>란 제목의 더할나위 없이 솔직하고 인간미 넘치는 면모를 아낌없이 보여준 그녀는 14년차 번역가이기도 하다. 


소설만큼이나 페이지터너인 그녀의 에세이를 읽다가 'potential'(잠재력)이란 단어로 '사랑이라는 잠재력'을 써 내려간 챕터 마지막 페이지에서 '쿵'하는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그가 자라는 것을 보고,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을 주고, 내 사랑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
내 인생의 가장 큰 특권 중에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눈물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가 정말로 기쁨으로 거두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쩌면 나도 이 일을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식물의 탄생과 성장을 연구하며 인생을 통찰한 과학자 호프자런은 <<랩 걸>>에서 아들을 낳은 후에 이렇게 고백한다.

올해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는 아들이 7살이 되던 때 7년 전 3월, 나는 11년간 내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던 '일'을 그만두었다. 사표를 내던 순간부터 거의 마지막 출근날까지 재택근무 옵션 등 다양한 제안으로 계속 일을 이어가도록 권유한 당시 GMO 부사장님께 무척 감사면서도 참담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몇 달, 아니 길게 1, 2년 정도 그런 제도를 활용하는 것으로 '엄마'가 되었기에 나에게 주어진 역할, 아니 나 이외에 그 어떤 대안도 없는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그 무거운 책임감으로 그렇게 나는 전업맘이 되었다.


그 동안 만 5세 아들과 만2세 딸을 사랑과 정성으로 키워주시던, 같은 아파트 단지내 살던 친정 부모님은 두 분의 새 삶을 그리시며 낙향하셨고, 나는 시댁과 같은 단지인 신랑 명의의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그렇게 새로운 환경에서, 육아, 살림 완전 초보인 나의 '풀타임 맘' 생활이 시작되었다.


회사에 출근할 땐, 통근 버스를 타기 위해, 혹은 모닝 미팅에 참석하기 위해 새벽 6시에 집을 나섰던 적도 많았던 것 같은데(그것도 bb크림에 립밤 정도는 바르고 오피스룩을 갖춰입고서~), 매일 7시에 일어나 아침을 챙겨 먹이고 두 아이 유치원 등원 준비를 챙기는 일은 정말이지 그리 만만치 않았다. 매일 아침 두 아이를 셔틀 태워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정신없이 어지러진 부엌을 마주하는 일은 내게 너무 너무 힘든 하루 일과의 시작이었다. 


글로벌 기업 HQ에서 브랜드전략 업무를 했던 나는, 전 세계 주요국가의 마케팅 책임자들과 소통하는 일이 많았다. 본사가 주도하여 외부 전문가들과 개발한 전략을 놓고 함께 회의하며 동의를 구하거나 법인장께 셀링하는게 나의 역할이었다. 운이 좋게도 주니어때부터 나에게 제법 많은 기회를 주신 boss를 만난 덕분에, 리더쉽을 발휘하여 전세계 다양한 여러 이해 관계자과 함께 프로젝트 결과물을 만들어 나가야 했던 경험들이 있다. 그런데, 매일 아침 유치원생 남매 등원시키기, 이 job은 나에게 지금까지 했던 그 어떤 힘들고 어려운 프로젝트 보다도 더 버거운, 내 능력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로켓 사이언스였다. 당시 나에겐 마치 프로메테우스의 형벌 같이 느껴졌달까! 매일 아침이 고되고 도망가고 싶었다. 야근과 출장의 연속이던 워킹맘 시절, 아이들 잠들기 전, 포옹이라도 실컷 해 볼 욕심에 힐을 신고 한 밤 고요한 단지 내 주차장을 뛰어 귀가하던 그 열정맘은 온데간데 없었다. 아침마다 아이들에게 빨리해라, 장난치지 마라, 찡그린 얼굴로 재촉과 잔소리만 반복하다 셔틀버스 시간에 지각할까 헐레벌떡 아파트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부시시한 추리닝 차림의 전업주부인 내가 된 게 스스로 낯설고 또 속상했다. 매일 매일.


노지양 작가 에세이에 인용된 <<랩걸>>의 한 구절. 태어난 아들을 보며 과학자 엄마 호프라전이 되뇌이던 그 문장의 맥락을 나는 알지 못한다. (오래도록 <<랩걸>>이 내 to read list에 있긴 했지만, 아직 읽어보지 못한 책이어서...) 그런데, 나는 나의 '특권'인, 보석같은 아이들과의 일상을 오롯이 함께 보낼 수 있었던 그 소중한 '풀타임 맘'으로서의 첫 발을 내딪던, 한없이 서툴고 부족했던 그 초보 주부의 시간들을 그녀의 문장에서 떠올려 고백해 본다.


https://blog.naver.com/hy718/221684584037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