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프레쉬 Apr 26. 2020

퇴사하고 싶어지는 워킹맘에게 권하고 싶은 책과 영화

'나만 포기하면 되나보다' 자포자기로 사표내기 전 이 책들을 알았더라면

'엄마됨'과 '나'사이 정체성을 치열하게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둘째 출산 후 일년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하면서 알게된 첫째 아이의 정서적 불안. 아동 심리상담과 놀이치료를 이어가며 일 하는 엄마로서의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커리어적으로는 좀 더 다이내믹한 업무 확장, 그리고 리더십 롤에 많은 에너지와 자극을 받으며 성장을 경험하고 있던 시기였다. 하지만 복직 후 1년을 그렇게 아슬아슬한 줄타기로 힘겹게 버텨오던 중, '엄마가 필요한 성향의 아이'인 것 같다는 상담 선생님의 말씀과 '아이들에겐 엄마가 필요해'라는 신랑의 지속적인 메시지가 나를 짖눌렀다. 입주 이모님이 살림과 아이들 케어를 돌봐주시고, 같은 아파트 단지에 친정부모님이 아이들 라이드와 돌봄을 함께 챙겨주시는 든든한 돌봄 지원을 받고있는 환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신랑과의 다툼은 잦아들지 않았다. 마치 내가 나의 커리어를 이어가는 것이 나 개인의 욕심을 위해 모두를 희생시키는것만 같은 프레임이 만들어져 있는 것 같았다. 죄책감에 하루하루가 힘겨웠다. 주변에 워킹맘 동료, 선후배 그리고 회사 밖 친구들의 워킹맘 일상을 보더라도 모두 비슷한 고민들로 하루하루 버텨가는것 같았다. 그나마 못되고 이상한 이모님을 만나지 않은것이 행운이었고, 도움을 받을 수있는 친정부모님께 감사해야 하는 비교적 훌륭한 서포트를 받는 현실에서도 난 왜 그렇게 탈출구 없는 갑갑함에 힘겹기만 했던지, 결국 '나만 포기하면...'이란 마음으로 '사표'라는 선택지를 택하고 말았다.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 셰릴 샌드버그의 책 <Lean In>의 한국 번역서 추천사를 쓰고 계셨던, 당시 조직내 최초 여성 부사장 타이틀을 가지신 나의 상사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무리 능력 있는 여성이더라도 성공하려는 의지, 리더가 되겠다는 의지만으로는 되지 않는 이런 환경(자녀 문제)도 있는거군요..."라고 매우 쓸쓸하게. 

나는 그 마지막 한 마디를 들으며 다시 속할 수 없는 조직에 굿바이를 고하며 일터를 떠났다.

그리고 퇴사한지 몇개월 후, 그 책을 만날 수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여성 리더 중 한명으로 선정된 저자의 이력에서 벌써 거리감이 느껴져서 많은 부분 공감하며 읽지는 못했다. 하지만, 내게는 한글판 '추천의 글' 덕분에 매우 특별한 '여성과 일' 주제에 입문서가 된 기념비적인 책이다. 

특히, 7~9장은 '육아'로 퇴사한 내게 여러번 울림을 주는 사례와 메시지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여전히 충분치는 않았다. '전부 소유하기(Having it all)'는 경제학 기본 법칙과 상식에도 어긋나는 시대에 뒤떨어진 과장된 표현이라고 했고(p.187), 일하는 여성은(특히, 엄마가 된) 누구나 시간과 인내심의 한계와 싸운다고 했다.(p.191) 하지만 그녀는 C-suite 리더로 본인이 결정권을 보다 많은 결정권을 가졌고, 주변의 지지자들에게 격려와 도움을 받았다. 

언젠간 일과 가정의 양자택일의 순간이 올 것이라 예상했지만, 졸업 후 창업 기회가 왔을 때 냉정을 되찾은 캐롤라인 오코너(Caroline O'Connor)의 다짐을 전하며, 이 순간 일과 출산,육아 사이에서 저글링하며 고민하는 (예비)엄마, 일하는 여성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내가 늘 해오던 대로 이 문제를 새롭게 설계할 과제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신생 기업을 성공적으로 출범시키는 일과 아기를 낳아 키우는 일을 절대 병행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고, 이것을 하나의 질문으로 설정하고 내가 디자이너로서
개발해온 도구를 사용해 대답을 찾기 시작했다.

세상에 지대하게 공헌한 사례들은 대부분 한 번에 한 사람을 돌보는 일에서 시작됐다. 우리 여성은 무엇보다 자기만의 지도를 그려보고 어떤 목표와 자기 삶과 가치, 꿈에 맞는지 먼저 정의해봐야 한다.

여성들에게 스스로 바꿀 수 있는 상황에 초점을 맞추고 기회가 생기면 달려들라고 촉구하는 내 태도를 놓고 사회제도를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두 번째 책을 만난건, 5년 경력단절 생활을 딛고 다시 내-일을 할 수 있게 된 때였다. 경력보유여성의 재취업을 돕는 '임팩트커리어W' 프로그램 과정 중, 진저티프로젝트의 Discovery Camp에서 이 책을 소개받았다. 


아틀랜틱 150년 역사상 가장 많이 읽힌 글로 "왜 여성은 여전히 다 가질 수 없는가"에 대한 기고문에 바탕을 두고,  2009년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장관으로 재임 당시, 여성 최초 국무부기획국장으로 재임하던 앤 마리 슬로터가 공직을 그만두고 떠나며 쓴 책이다.

셰릴 샌드버그가 개인의 노력과 마인드에 좀 더 동기부여를 했다면, 앤 마리 슬로터는 일-가정 양립에 대한 여성뿐 아닌 남성, 직장문화의 인식과 편견을 해체하고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변화를 위한 담론을 제시했다. 


사람들이 가장 흔히 말하는 세 가지 만트라(아래)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생각했다.(p.33)

1. 일에 헌신하면 다 가질 수 있다
2. 잘 맞는 사람과 결혼하면 다 가질 수 있다.
3. 순서를 잘 정하면 다 가질 수 있다.
회사의 좋은 제도(유연근무)를 이용한다고 해서 "엄마 트랙(the mommy track)"을 택했으니 리더십 트랙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기회를 박탈당하는 건 옯지 않다고 문제 제기 한다.(유연근무제 낙인효과, Flexibility Stigma (p.102)) 이는 인내심, 의지력, 강인함과 유연한 복원력을 가진 장거리 경주 선수를 잃는, 사회적으로도 엄청난 재능의 손실을 의미한다고 충고한다.


저자는 또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익숙한 언어 표현에 대해서도 제안한다.

우리가 선택하는 언어들은 사회적으로 무엇이 정상이고, 정상이 아닌지, 무엇이 허락되고 허락되지 않는지, 무엇이 가치 있고, 가치 없는지에 대한 깊은 가정을 반영하고 강화한다. 우리가 말하는 방법을 바꾸면 미묘하지만 강하게 포용한다는 의미를 전달할 수도 있고 말하는 대상에 대해 가지는 자동적인 편견을 바꿀 수도 있다.


직장과 아이를 둘 다 가지고 있는 남자에 대해 "일하는 아버지 working father" 혹은 "일하는 부모 working parents"라고, 전업으로 집에 있으면서 아이를 돌보는 남자나 여자에 대해 "주도적 부모 lead parent", "정박형 부모 anchor parent" 혹은 "전업 부모 full-time parent"와 같은 묘사적인 언어 사용을 권한다. "집에서 노는 엄마/아빠 stay-at-home mom/dad"는 사회의 규범은 직장이고 집에 있는 사람들은 무언가 자격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의미를 내표하기 때문이다.

3부 평등으로 가는 길에서 저자는 강하게 충고한다. '가능하면 경기장을 떠나지 않고 머물러 있어야 한다'고. '위기 상황일수록 직장을 그만두는 선택은 절대로 하지 말아라'(p.262)고. 

나는 처음에 직장을 그만 둘 때 결심보다 재취업이 훨씬 더 어렵다는 현실을 실감한 경력단절 5년 후에야, 이 말을 발견하고 무척 아쉬웠다. 




그 때 내 주위에 이런 이야기를 해 주는 선배가 한 명만 있었더라도, 그런 시기를 잘 헤쳐 커리어를 이어가는 레퍼런스 삼을 만한 앞서가는 여성이 한명만 있었더라도 다른 선택지를 고민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너무 서러웠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몇 가지 책과 영화에서 위안을 얻었다. 1979년에 나온, 지금으로부터 39년 전 영화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와 2019년 <결혼이야기>에서 자신의 일과 삶을 주체적으로 찾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통쾌했다.(신랑은, 나와 아이들을 떠나고 싶은거냐며 계속 의심의 눈초리를 며칠 간 거두지 못했다~)


그리고 작년에 읽은 페미니즘 경제학자 마이라 스트로버의 회고록 <뒤에 올 여성들에게>도 결정적인 울림과 깨달음을 주었다. 398페이지 벽돌책으로 사두고 꽤 오랜동안 읽지 못했는데, 경력보유여성 동기들과의 북클럽에서 함께 읽고 나누어 내겐 더 큰 의미로 기억되는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어릴 적, 동네에서 유일하게 돈을 받고 일하는 여성이었던 엄마는 마이라 스트로버가 결혼하기를(그것도 잘하기를) 바랐지만, 커리어를 쌓기도 원했다고 한다. 

결혼은 인생의 전부가 아니고, 인생을 모두 끝내 버리지도 않는단다.


'엄마됨'에 감격하고 감사하면서도 돌봄의 시간을 자녀와 함께 하지 못하는 죄책감에 퇴사를 고려하는 오늘의 일하는 여성에게 사표를 쓰기 전, 위의 책과 영화를 권하고 싶다. 그리고 워라밸(work-life balance) 말고 work-life 'fit'을 위해 꼭 자녀돌봄을 하는 부모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의 방식에 꼭 맞는, 각자의 커리어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일하는 모든 어른을 위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워킹맘에서 풀타임 맘으로의 그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