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의 따스함

때로 인생은 한 잔의 커피 같다

by 뤼도빅

리처드 브로티건의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p.44에는 “때로 인생은 한잔의 커피 같다”라고

번역되어 있었다.


그런데 원문은 “Sometimes life is merely a matter of coffee and whatever intimacy a cup of coffee affords.” 직역하면 “때로 인생은 한 잔의 커피와 그 커피가 주는 친밀감의 문제일 뿐이다” 정도가 된다. 번역이 지나치게 단순화된 것 같아 의아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집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에서도 비슷한 인용이 나온다. “때로 인생이란 커피 한 잔이 안겨주는 따스함의 문제, 라고 리처드 브로티건은 어느 작품에 썼다.” 그러나

이 역시 원문과는 미묘하게 다르다.

하루키는 문장을 조금 의역해, ‘커피가 주는 따뜻함’ 쪽으로 감정의 초점을 옮겨놓은 셈이다.


브로티건 한국어 번역본은 대체로 산문시 같은 리듬과 간결함을 살리려는 경향이 있어, 직역보다는 짧고 단순한 어감을 택한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한국어판이 2015년에 출간된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당시에는 ‘친밀감’보다는 이해하기 쉬운 표현이 선호됐을 가능성이 크다.


또 원문에 나오는 “coffee and whatever intimacy a cup of coffee affords”라는 구절은 영어권에서는 자연스럽지만, 한국어로 옮기면 다소 어색해 번역자가 ‘친밀감’이라는 뉘앙스를 통째로 덜어낸 듯하다.


뜻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조금 아쉽기도 했다. 원문 속 “intimacy” 가 주는 뉘앙스가 빠지면서 브로티건 문장의 따뜻하고 은근한 결이 한국어판에서는 충분히 살아나지 못한 듯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하루키가 택한 “따스함”이라는

표현에 더 마음이 끌렸다.


이 문장을 곱씹다 보니 오래된 기억이 떠올랐다.

2018년 9월 4일 화요일, 퇴근 후 그녀는 나에게

커피 한 잔을 하자고 했다.


아마도 우리 사이를 이어주던

그 커피 한 잔의 따스함이 사라졌을 때,

우리의 관계도 끝나버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