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프로 사이클 선수다.
그러나 내 인생에서 가장 깊게 페달을 밟았던 시간은
안장 위가 아니라 자동차 운전석에 앉아 있었던 그 시절이었다.
그녀는 내 옆자리에 앉았고, 나는 그 순간부터 자전거보다 그 여자가 더 궁금해졌다.
이야기는 그리 특별하지 않다.
스물여섯, 새로운 회사로 이직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그녀를 만났다.
입사 추천을 해준 팀장 형은 몇 번이나 말했다.
“S랑 잘 지내봐. 동갑이고 괜찮은 애야.”
‘괜찮다’는 말은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래서 더 신경 쓰였다.
처음 본 그녀는 단정한 단발머리에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말투는 단호하고, 눈웃음은 없었다.
첫인상은 좋지 않았다.
내가 속으로 생각했던 문장은 이랬다.
“아, 이 여자랑은 사귈 일 없겠구나.”
나는 비흡연자였고,
그녀는 내 기준에서 너무 솔직하고, 직선적인 사람이었다.
며칠 뒤, 나는 그녀에게 카풀을 제안했다.
그녀의 집이 내 출근길 중간쯤에 있었고,
같이 타고 가면 편하겠다는 실용적인 판단이었다.
“출근길에 중간에 들르면 되니까요.”
그녀는 별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차 안은 조용했다.
라디오에서 흐르는 DJ의 멘트와 창밖의 움직이는 풍경.
그녀는 창밖을 바라봤고, 나는 운전대를 잡고 앞만 봤다.
대화는 거의 없었다.
그게 편했다.
어느 날, 그녀가 물었다.
“운동하세요?”
“네, 자전거요.”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 이후, 그녀는 종종 나에게 물었다.
“오늘도 탔어요?”
“몇 킬로 정도 달려요?”
나는 대답했고, 그녀는 가끔 고개를 끄덕였다.
그뿐이었다.
그런데 그 사소한 대화들이 자꾸만 기억에 남았다.
마치 몸에 붙은 먼지처럼, 털어도 어딘가에 남아 있는 기분이었다.
회사 동료의 결혼식이 있었다.
멀리 떨어진 식장에 가야 했고,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를 태우고 갔다.
왕복 세 시간.
도로는 막혔고, 우리는 그 안에서 처음으로 오래 이야기했다.
어색하지 않았다.
이야기의 결이 비슷했다.
좋아하는 영화, 싫어하는 계절, 언젠가 가보고 싶은 도시.
그녀는 일본을 좋아한다고 했다.
“혼자 가봤어요. 이번엔 누구랑 가볼까 고민 중이에요.”
그녀가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그냥 웃었다.
며칠 뒤, 그녀가 말했다.
“여름휴가 때 일본 가는데, 같이 갈래요?”
나는 당황했다.
“회사 동료랑 해외 여행을...?”
머릿속이 복잡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내가 언제 여자랑 해외를 가보겠나.’
처음엔 셋이 가기로 했었다.
그녀, 그녀의 지인, 그리고 나.
그런데 여행이 가까워질수록 구성원은 줄었고,
결국 우리 둘만 남게 됐다.
호텔을 예약할 때, 나는 따로 방을 잡자고 했다.
그녀는 말했다.
“트윈룸으로 해요. 침대는 나뉘어 있으니까.”
그녀는 무심했지만, 나는 당황했다.
여행 준비를 핑계로 우리는 자주 만났다.
퇴근 후 카페, 마트, 환전소.
그 시간들이 좋았다.
그녀가 궁금해졌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여자의 말투,
가끔 생각보다 조용한 눈빛,
묘하게 따뜻한 뒷모습.
어느 날,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을 때
그녀가 옆자리를 툭 치며 말했다.
“여기 앉아요.”
나는 자리를 옮겼고,
그녀는 말없이 내 어깨에 기대었다.
쿵, 쿵, 쿵—
심장이 크게 울렸다.
바로 옆 귀에 들릴까 봐 조마조마했다.
그날,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는 웃었다.
“이상하죠? 나도 그래요.”
우리는 고백도 없이, 사귀게 되었다.
일본 여행은 짧았지만 선명했다.
비 내리던 골목, 호텔 커튼 틈 사이로 스며들던 햇살,
함께 고르던 편의점 도시락.
트윈 침대였지만 우리는 한 침대에 누웠고,
마침내 하나가 되었다.
뜨거웠던 시간이 지나고,
그저 서로를 바라보다 스르르 잠들었다.
그게 전부였는데,
그 전부가 모든 것이었다.
여행이 끝나고 일상은 생각보다 빠르게 돌아왔다.
우리는 다시 회사원으로, 동료로 돌아가야 했다.
시선이 부담스러웠고, 우리는 애써 자연스러운 척했다.
카풀은 계속됐지만, 대화는 줄었다.
그녀는 야근이 잦아졌고, 나는 자전거를 더 자주 탔다.
점점, 거리가 생겼다.
“넌 언제나 도망치는 쪽이야.”
그녀가 그렇게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게 맞는 말 같아서.
이별은 특별하지 않았다.
어떤 대화도 없이,
그저 연락이 줄고,
마음이 줄고,
시간이 지나며 사라졌다.
나는 이후, 더 깊게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동호회, 대회, 팀 입단, 그리고 훈련.
지금 나는 프로 사이클 선수다.
몸은 가벼워졌고, 마음은 여전히 가끔 무거워진다.
자전거를 타다 보면, 문득 그녀가 떠오른다.
창밖을 바라보던 눈빛,
내 어깨에 기대던 체온.
그녀는 내 인생의 가장 찬란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내 안장 위에 피어난 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