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먼 북소리》

읽고 나서 굳이 소장하지 않게 된 책

by 뤼도빅

책을 읽다 보면, 어떤 건 읽자마자 곁에 두고 오래 쓰다듬고 싶은 마음이 든다.

반대로, 한 번 읽었으면 충분하다고 느껴져서 조용히 서가에서 내려놓게 되는 책도 있다.


나에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는 후자였다.

이 책은 1986년 가을부터 시작된, 하루키의 유럽 장기 체류 기록이다.


그 시절의 여행은 지금과 전혀 다른 리듬과 공기를 가졌다. 휴대폰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

그가 묘사하는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풍경은 생생하지만, 나에게는 낯설었다.


왜냐하면 그때 나는 태어나기 전이었거나, 아직 기억을 가질 수 없는 시기의 한 아이였으니까.


여행 에세이에서 내가 기대하는 건, 풍경 너머의 사유다.

카프카의 문장처럼,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한 줄을 읽고 나서도 오래 붙잡고 생각하게 되는 무언가.


그러나 《먼 북소리》는 그보다는 생활 기록에 가까웠다.

소설 집필과 마감 이야기, 작은 사건과 인상들.

의미를 억지로 찾아보려 했지만, 솔직히 말해 마음을 크게 건드리는 순간은 없었다.


그럼에도 남은 건 있다.

《노르웨이 숲》이 탄생하던 시기의 하루키가 어떤 곳에 있었고, 무엇을 보고, 어떤 마음을 품었는지

조금은 들여다본 경험이다.


그것만으로도 문학사적 자료로서의 가치는 있다.

하지만 내 서가에 오래 남을 만큼의 울림은 아니었다.

그래서 책은 떠나보냈다.

내게 남은 건 한 권의 책이 아니라, 그 책을 읽고 적어둔 짧은 독서노트 한 장이다.

책은 사라졌지만, 그때의 생각은 이 기록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다.




p.15

나이를 먹는 것은 내 책임이 아니다. 누구나 나이는 먹는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두려웠던 것은 어느 한 시기에 달성해야 할 무엇인가를 달성하지 않은 채로 세월을 헛되이 보내는 것이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다.


p.21 ~ 22

내가 이런 글을 쓰기 시작한 본래의 목적은, 한편으로는 외국에 있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둔화될 것 같은 내 의식을 일정한 문장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붙잡아 놓는데 있었다. 자기 눈으로 본 것을 자기 눈으로 본 것처럼 쓴다. 이것이 기본적인 자세이다.


p.169

내가 방황하는 것은 내가 고향을 멀리 떠나왔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방황하는 것은 내가 내 자신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나는 멀리 내 자신으로부터 떨어진 장소에서 또 다시 조금 이동하려 하고 있다.


p.214

장편소설을 쓰는 것은 내 경우 매우 특수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어떠한 의미에서도 그것을 일상적인 행위라고 할 수는 없다. 예를 들면 깊은 산림 속에 혼자 들어가는 것과 같다. 수목은 벽처럼 빽빽하게 들어서 있고 거대한 가지는 겹겹이 뻗어 하늘을 가리고 있다. 거기에 어떤 동물이 서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장편소설을 쓸 때면 항상 머릿속 어디에선가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p.355

돌이켜보면 이해는 우리 부부에게 그다지 좋은 해는 아니었던 것 같다. 일본으로 돌아오자 《상실의 시대》는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어 있었다. 줄곧 외국에 있어서 국내 사정을 잘 몰랐기 때문 이기도 하지만, 오랜만에 일본에 돌아와 자신이 유명인이 되어 있는 것을 알고는 나는 뭐랄까, 어안이 벙벙해졌다. 신문의 베스트 셀러 목록을 보면 어느 서점에서나 《상실의 시대》가 1위였다. 고 단샤 사옥에는 빨간색과 초록색의 화려한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나는 볼일이 있어 때때로 에도가와바시에서 고 코쿠지 까지의 길을 지나가야 했는데, 그 현수막을 볼 때마 다 너무 부끄러워서 늘 못 본 척했다.


p.356 (노르웨이숲이 베스트셀러간 된 직후)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분수에 맞지 않고 오만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일종의 안타까움에서 벗어날 수 가 없었다. 무엇이 안타까운지는 잘 모르지만 아무튼 어쩔 수 없을 정도로 안타까웠다. 어디를 가도 내가 있을 곳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여러 가지 것들을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책이 50만 부 팔렸을 때 나는 물론 기뻤다. 자신이 쓴 책이 광범위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다는 점은 작가로서 기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기쁘기도 했지만 그 이상으로 깜짝 놀랐다. 나는 50만 명이나 되는 사람이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독자 로서도 상상할 수 없었을뿐더러 단지 '인간의 숫자' 로서도 상상할 수 없었다. 10만 정도 사람이라면 나도 대충 상상이 간다. 하지 만 50만이 되면 내 능력 밖의 일이 된다. 그 후로는 더 심해졌다. 100만, 150만, 200만, 그것들은 내게는 실체를 갖지 않는 단지 거대한 숫자에 지나지 않았다.


p.356 ~ 357 (노르웨이숲이 베스트셀러간 된 직후)

매우 이상한 일이지만 소설이 10만 부 팔리고 있을 때는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호감을 받으며 지지를 얻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상실의 시대》가 백 몇 십만 부나 팔리고 나자, 나는 굉장히 고독했다. 그리고 내가 많은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왜 그랬을까? 표면적으로는 모든 일이 잘되어 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때가 내게는 정신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였다. 몇 가지 안 좋은 일, 재미없는 일도 있고 해서 마음이 상당히 냉랭해져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결국 나는 그런 상황에 놓이는 것이 체질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성격도 못 될뿐더러 그런 그릇도 되지 못했다. 그 시기에 나는 지치고 혼란스러웠고, 아내는 건강이 안 좋았다. 글을 쓸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하와이에서 돌아와 여름 내내 번역을 했다. 자신의 글을 쓸 수 없을 때라도 번역은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소설을 꾸준히 번역하는 일은 내게는 일종의 치유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것도 내가 번역을 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p.501

유럽에서 보낸 3년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저런 일을 겪은 후 결국 본래의 위치로 돌아온 것 일 뿐 달라진 건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나는 말 하자면 상실된 상황에서 이 나라를 떠났다. 그리고 마흔 살이 되어 돌아온 지금도 여전히 그때처럼 나는 상실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무력감은 무력감으로서, 피폐는 피폐로서 그대로 남아 있다. 두 마리 벌, 조르지오와 카를로는 지금도 어딘가에 몸을 숨기고 있다. 그들이 예언했던 것처럼 그저 나이만 먹었을 뿐이고 아무것도 해결되지는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한다. 다시 한 번 본래의 위치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만도 다행이 아닌가, 훨씬 안 좋은 상황이 될 수도 있었다, 라고. 그렇다, 나는 낙관적인 인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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