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떡볶이 맛없어요

떡볶이에 꽤 진심인 편

by 이소머

다른 음식은 다 없어도 괜찮은데, 만약 떡볶이 금지령이 내려져서 앞으로 떡볶이를 먹지 못하게 된다면 좀 많이 힘들 것 같아요. 떡볶이는 저와 떼놓을 수 없는 소울푸드거든요. 학창 시절 가장 뿌듯한 순간은 바로 맛있는 떡볶이집을 발견했을 때였고, 자주 가던 떡볶이집 사장님이 바뀌어 맛이 달라지거나 아예 사라지면 그렇게 허전할 수가 없었죠.


성인이 되고 나서는 예전만큼 떡볶이를 많이 먹는 건 아니지만 그 쫄깃한 식감과 매콤한 땡기는 날이 있어요. 그런 날엔 꼭 떡볶이를 먹어줘야 하그등요. 지난주 목요일이 바로 그 날이었습니다. 저녁 느지막이 남자친구랑 마트에 갔는데 마침 떡볶이집이 있더라고요. 어릴 때 몇 번 가본 적 있는 체인점이었어요. 특유의 양념 맛과, 같이 나오는 오뎅국물이 맛 좋은 곳이어서 믿고 갔습니다.


일반 떡볶이와 당면 떡볶이 중 뭘 먹을지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당면 떡볶이를 골랐어요. 남자친구는 다이어트 때문에 안 먹는다며 저만 먹으라고 떡볶이를 사줬고요. 한 5분 후에 떡볶이가 나왔어요.


와 그런데… 제목에 있는 사진의 떡볶이와 비슷한, 그러나 훨씬 맛없게 생긴 떡볶이가 퉁명스레 등장했습니다. 저건 퍼온 사진이니 오해는 하지 마시고요. 아무튼 허여멀건 한 떡과, 삶기만 한 채 그대로 떡 위에 대충 올려진 듯한 당면의 불량한 꼴을 보니 불길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자, 미리 밑밥을 깔자면 저는 음식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입니다. 동기들은 학식 맛없다고 안 먹을 때도 저 혼자 잘 먹었고요, 반찬 투정하거나 가려서 엄마한테 맞아본 적도 없고요, 차갑게 식은 도시락도 잘 먹어요. 게다가 떡볶이는, 맛이 없으면 안 되는 음식이잖아요(누가 정했는데).


그런데 말입니다. 정말 제가 먹어본 떡볶이 중에서 제일 맛없었어요. 맛있고 맛없고의 맛이 아니라, 그냥 맛 자체가 느껴지지 않았어요. 고등학교 때 친구네 집에서 멋모르고 끓여서 물은 저기 대서양 바다만큼에 각자 취향에 맞는 사리를 되는대로 섞어 만든 떡볶이보다도 맛이 없었어요. 이런 걸 돈 주고 팔다니 정말 나쁘다… 정말 정말 나빴다… 되뇌게 만드는 맛이더라고요.


제가 똥 씹은 표정으로 성의없게 떡을 깨물고 있는 걸 본 남자친구가 "맛있어?" 하고 물었어요. 차마 "아니 맛대가리 없어서 화딱지가 나"라고 말할 수는 없어서 돌려서 대답했습니다. 남자친구가 사줬으니까요.


"음…^^ 간이 하나도 안 뱄네 하하" "맛없구나?" "..."


사장님... 사장님의 맛없는 떡볶이가 제 하루를 망쳤어요...(퍼온 사진)


배는 고팠고, 떡볶이는 먹고 싶었으니까 억지로 먹긴 했습니다. 같이 나온 오뎅국물은 괜찮더라고요. 떡을 입에 넣자마자 오뎅국물 한 숟가락 함께 넣으면서 그릇을 비워갔습니다. 근데 당면은 도저히 못 먹겠어서 남겼어요. 물에 불린 지우개 먹는 것 같아서요.


떡을 씹으면 씹을수록 화가 났습니다. 나는 맛있는 떡볶이를 먹고 싶었을 뿐인데..! 왜 맛있지 않은 거지? 떡볶이가 이렇게 맛없는 건 죄 아닌가? 나처럼 떡볶이 먹고 싶어서 온 다른 사람들도 무지 화날 텐데! 사장님은 이게 맛없는 줄 모르니까 팔고 계신 거겠지? 그렇다면 따끔히 말… 하면 좀 진상인가? 오지랖인가?


먹으면서 계속 고민을 했어요. 떡 하나에 분노와, 떡 하나에 포기와, 떡 하나에 슬픔과……. 괜히 얘기했다가 싸움 나는 거 아닌가?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와서 떡으로 뺨이라도 때리면 어쩌지? 아니 근데 인간적으로 너무 맛이 없잖아! 그러다 결국은 용기를 냈습니다. 떡볶이 그릇을 퇴식구에 갖다 두면서, 사장님을 불렀어요.


"사장님, 저 방금 떡볶이 먹었는데요."

"네네, 왜 그러세요?"

"막 나와서 참 따뜻했는데 떡에 양념이 안 배서 아무 맛도 안 나더라고요."

"아 네… 저희가 양념을 방금 만들어가지구요."

"네 그런 것 같았어요, 방금 막 끓이신 거 봤어요. 얼른 만들어주려고 하신 거 아는데… 진짜 맛이 하나도 안 나서요. 다음번 손님한테는 더 양념 배서 나가면 좋을 것 같아요."

"네에 알겠습니다."


말을 하기 전까지는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심사숙고했어요. 그런데 말하고 나니 속 시원하더라고요. 다른 사람한테 싫은 소리 하는 거, 사람들과 부딪히고 갈등 생기는 거 진짜 못 하고 싫어하는데 이렇게까지 하는 걸 보니 저는 떡볶이에 꽤나 진심인가 봅니다.


떡볶이 맛없다고 말해도 괜찮다

많은 한국인들이 그런 것처럼 저 또한 불만이 있어도 꾹 참아왔어요. 굳이 나서서 갈등 만들 이유도 없고, '참을 수 있을 정도라면 그냥 참는 거지'하고 무던하게 살려고 평생 노력했습니다.


솔직하게 생각해보면 '튀는 사람 될까 봐' 무서운 마음이 제일 컸던 것 같아요. 사실 이번 떡볶이 사건에서도 말할까 말까 망설였던 가장 큰 이유는 남자친구나 사장님, 그리고 마트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저를 이상하게 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거든요. 이 문장을 써내기까지 참 돌고 돌아왔네요. 쓰면서 얼굴이 빨개졌어요.


말하기로 마음을 먹고서도 두려웠던 저는 얼른 퇴식구에 그릇 갖다 놓고, 남자친구가 오기 전에 후다닥 사장님한테 말해버렸어요.


그런데 말하고 나니까요,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사장님은 떡볶이를 얼굴에 날리지도 않았고, 남자친구는 장난스런 말투로 "컴플레인 걸었어? 뭐라고 했어?"하고 묻고는 제가 뭐라고 얘기했는지 얘기해주니까 "진짜 맛없었구나ㅎㅎ" 하고는 룰루랄라 카트를 밀며 걸어갔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 참 대견하고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두려웠음에도 불구하고 그 단단한 알을 깨고 나오려고 애썼구나! 괜한 걸 두려워했었다는 걸 깨달았고, 앞으로는 좀 더 표현하고 살아도 괜찮겠다는 용기가 생겼어요.


그러니 여러분도 떡볶이가 맛없을 땐 사장님을 불러 세워 보세요. 저는 아직 "맛없어서 못 먹겠으니 돈 돌려주세요"라고 말할 레벨은 안 되지만 조심스럽게 표현해보니 덜 억울하더라고요. 떡볶이 맛없으면 화나잖아요. 맛없는 떡볶이 없는 세상을 위해 용기 내보아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는 왜 카톡이 힘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