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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머 Aug 28. 2022

책장에 행복을 꽂아두었다


 내 작은 책장이다. 원랜 좀 더 더러웠는데 사진 찍겠다고 좀 정리했다. 정리를 하고 나니 지쳐서 원래 계획했던 글쓰기에 차질이 생길 뻔했으나... 어제도 글을 쓰겠다고 다짐해놓고는 바위에 붙은 홍합처럼 침대에 붙어 생산적인 활동이라고는 똥싸기밖에 안 했으므로 양심을 인질 삼아 노트북 앞에 앉았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 애기 땐 엄마가 책을 많이 읽어줬다. 엄마 말에 따르면 따로 한글을 가르쳐준 적도 없는데 어느 날 혼자 책을 보면서 글자를 줄줄 읽었다고 했다. 20년 이상 책을 읽어온 셈인데 내 책장을 가진지는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한 번 읽은 책을 다시 읽는 일이 없고, 책을 아예 안 읽는 시기를 보내가도 갑자기 꽂히면 하루에 세 권도 읽고 하다 보니 전부 사서 읽는 게 부담이었다. 


 그러다 올해 초에 문득 내가 좋아하는 책만 엄선해둔 책장을 갖고 싶었다. 그동안 책을 많이 읽긴 했는데 다 빌려서 읽다 보니 나한테 남은 게 없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한 권 두 권 책을 사다 꽂았다.


뒤에서 본 책장. 알록달록 붙은 포스트잇을 보면 괜히 부자가 된 것 같다. 

 일반 책장들과 다른 점은, 한 칸씩 구매할 수 있는 책장이라는 점인데 사이즈도 다양하고 딱 필요한 만큼만 두고 쓸 수 있다. 지금은 두 개를 사서 두 단을 두고 쓰고 있다.


 같은 책이어도 빌려 읽는 것과 사서 읽는 것에는 차이가 많다. 일단 내가 가장 크게 느끼는 건 몰입감이다. 빌려서 읽을 땐 어차피 공짜니까 엄청 재밌어야만 집중해서 봤다. 재미가 없으면 금방 덮고 반납해버렸고. 그렇지만 내 돈을 주고 사서 읽으니 조금 재미가 없더라도 문장 하나라도 건지기 위해 꼼꼼하게 읽는다. 일부러 정을 붙이려고 예쁜 구석을 찾는다. 그러다 보면 점점 읽을만해진다. 이렇게 취향을 조금씩 넓혀갈 수 있다.


 게다가 한 번 들인 책은 내보내기 어렵다. 돈 주고 산 것이다 보니 아깝기도 하고, 중고서점에 팔자니 아무 책이나 받아주지도 않더라. 서점에서 책을 살 때 신중해진다. 내가 과연 이 책을 두 번 이상 읽을 것인가? 소장할 만한 가치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정성 들여 책을 살핀다. 그 시간이 정말 좋다. 


 책이 가득 찬 책장을 보는 건 좋다. 너무 쌓여서 꽂은 책 위로 또 책이 쌓이고 책장 밖으로 떨어질락 말락 할 때는 정리하기 싫어서 못 본 척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내가 좋아하는 책이 담긴 책장을 보는 건 좋은 일이다.


 사진 찍으려고 책 정리하다가 출판사별로 꽂아 넣는 나를 보고 새삼 놀라기도 했다. 내가 이런 걸 신경 쓰는 사람이었구나. 꽂혀 있는 책 중 안 읽은 책이 5권 정도 되는 걸 보고도 뜨악했다. 사고 싶은 책들 장바구니에 잔뜩 담아뒀는데. 도서관에서 상호대차 신청도 몇 권 했는데. 있는 책부터 읽어야 된다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눈은 새로운 책들만 좇고 있다. 이건 내 탓이 아니다. 재밌는 책이 자꾸 나오는 걸 어떡해? (내 탓 맞음)



아직 안 읽은 책들과 아래칸에 넣어둘 책들

 책장 위는 아직 정리되지 않은 책들과 노트북과 아이패드와 쓰고 난 마스크들과(좀 버려라) 블루투스 키보드 같은 잡동사니가 막 굴러다녔는데 그래도 이번에 싹 정리했다. 마음이 훨씬 차분해졌다. 앞으로는 책장 위도 깔끔하게 정리하자. 방금 전 문장을 타이핑하는 순간에도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책장 위에는 또 금방 다른 짐들이 올라갈 거라는 걸. 


책장 한편에 둔 다이어리와 속지, 스티커들

 내 책장과 책들이 너무 좋아서 언젠가 한 번은 글로 꼭 써서 기록을 남기고 싶었는데 드디어 해치워서 기쁘다. 책은 점점 늘어날 거고 책장도 한 칸씩 더 살 테지. 지금은 단 두 칸이고 그마저도 아래칸은 책상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내 책장은 얼마나 더 커질까? 책은 얼마나 더 많아질까? 책이 좋지만 너무 많은 양을 집에 보관하는 건 싫다. 꼭 갖고 싶은 책만 들이고, 양이 많아지면 적당히 솎아내면서 감당 가능한 만큼만 두고 보자. 꼭 그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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