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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머 Sep 14. 2022

경기러는 강하다

근데 왜 가도 가도 집이 안 나오냐

 집에서 회사까지는 1시간 10분 걸린다. 다시 회사에서 집까지 1시간 10분. 처음엔 괜찮을 줄 알았다. 경기러(경기도 사람)에게 편도 1시간 거리란 갈만한 정도니까. 버스 빼고 지하철만 두고 봤을 땐 환승 한 번. 가끔 운 좋으면 앉아서 갈 수 있고.


 그런데 한 달 넘게 출퇴근을 반복하다 보니 슬슬 지친다. 전 회사에서는 재택근무를 했었고, 전전 회사에서는 자가용을 타고 다니느라 까먹었던 K-대중교통의 고단함이여.


 가장 힘든 순간은, 가도 가도 한참 멀었다는 걸 느낄 때다. 이제 거의 다 왔겠지? 하면 아직도 선정릉이고. 배고파 죽겠는데? 하면 이제 겨우 환승하고. 앞으로 30분 더 가야 하고. 1시간 10분은 그런 시간이다. 넷플릭스 한 편 볼 때는 뚝딱이지만 집에 가는 길이라면 한없이 늘어지는. 퇴근길, 집으로 가는 여정이 너무 고단해서 퇴사한다고 하면 미친 걸까요. 미친 게 맞겠지요. 1시간 10분은 또 그런 시간이니까요. 길긴 하지만 그렇다고 못 버틸 정도는 또 아닌.


 두 번째로 힘든 건 접촉이다. 누가 이 시대를 두고 사람과 사람 간의 연결이 약해졌다고 했는가. 퇴근 시간 9호선에 한 번 타보면 생각이 달라질 텐데. 너무 과하게 밀착되고 진하게 접촉한다. 사람들이 내리려고 나를 밀어댈 때면 소리라도 지르고 싶다. "저도 이번에 내려욧!!!!!" 밀지 좀 말라. 내가 이번 역에서 안 내리더라도 어련히 비켜주고 내렸다가 다시 탈 텐데. 그래. 그들도 빨리 집에 가고 싶은 거겠지. 나처럼. 


 애초에 지하철을 타는 것도 힘들다. 퇴근시간 지하철 역에 사람이 많은 건 너무 당연하지만, 지하철 타러 내려가는 그 계단 위까지 사람이 바글바글한 건 또 처음이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이 급행열차에 막 어떻게든 탄다. 9호선은 마법사가 운행하는 걸까. 처음 이 퇴근길을 겪을 땐 사람이 하도 많아서 무슨 촛불집회 날인 줄 알았다.


 물론 물리적인 한계 때문에 타지 못하고 스크린도어 앞에 남는 사람들이 있다. (주로 내가 그 역할을 맡는다) 그들은 우울한 표정으로 다음 열차를 기다려야만 한다. 이 많은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갈까 가끔 생각해 본다. 나처럼 경기 동쪽에서 여기까지 흘러들어온 걸까. 아니면 서울에 살려나. 그렇다면 부럽습니다.


 경기러로서 한스러운 점 2가지. 첫째, 회사들이 서울에 있다. 둘째, 우리 집이 경기도에 있다. 환승을 안 하면 그럭저럭 갈만 하겠는데... 아니? 환승 안 해도 1시간 10분은 너무 길다. 


 경기도의 어린이들은 강하게 자란다. 놀려고 서울에 간다. 편도 1시간 30분 정도는 너끈하다. 나도 어릴 적엔 홍대에 놀러 다니고 그랬는데 이젠... 정말 사랑하는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게 아니라면 못 가겠다. 강했던 경기 어린이는 이제 늙고 지쳤다. 제목을 정정하겠다. '경기러는 강했었다'


 아. 생각해보니 가끔 좋은 것들도 있다. 퇴근길에 타는 지하철에서 가끔 상냥한 기관사님을 만난다. 고속터미널같이 사람이 많이 내리고 타는 역에 도착하기 전에 "다음 역은 고속터미널입니다. 고속터미널 역에서는 내리시는 손님이 많으니 주의하세요", "문 여유있게 닫을테니 천천히 내리고 타세요"라고 안내를 해주시는. 퇴근 시간대에 9호선 중앙보훈병원행 열차 운행해주시는 기관사님, 덕분에 마음 따뜻하게 퇴근합니다. 스케줄 로케이션으로 돌아가려나. 아무튼 그렇다. 가끔 그렇게 친절이 느껴지면 그래, 집까지 뭐 금방이지 싶어진다.


 백팩을 앞으로 맨 사람들은 보기만 해도 호감이 간다. 저 사람은 분명 좋은 사람일 거라고 믿게 되고. 등에 맨 백팩에 치이다 보면 겨우 그런 것만으로도 인류애가 생긴다. 


 출퇴근 시간을 독서 시간으로 활용하고 있어서 그런지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도 눈길이 간다. 무슨 책 읽나 궁금하기도 하고(하지만 제가 읽는 책은 들여다보지 말아 주세요) 괜히 내적 친밀감도 느껴진다. 


 징징대다가 끝내기는 싫어서 그래도 훈훈한 점들을 생각해봤는데 여기까지가 한계인 것 같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어쨌든 주 5일 꼬박꼬박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자. 오늘의 교훈: 회사 근처에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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