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애 깊은 나라, 그러나 이혼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
베트남에서 사람들을 지내다 보면 놀라운 점이 많다. 그중 하나는 가족에 대한 애착이 정말 강하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에게 효도하는 법을 배우고, 명절마다 온 가족이 고향에 모여 조상을 기리고, 형제끼리 서로의 삶을 챙긴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또 하나의 반대되는 현실을 보았다. 그렇게 가족을 중시하는 나라에서, 젊은 나이에 이혼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이다. 겉으로는 안정된 가정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혼 후 각자 새 인생을 살아가는 부부도 적지 않았다.
이 모순 같은 현상이 궁금했다.
'가족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긴다면, 왜 이혼은 그렇게 쉽게 받아들일까?' 이 질문이 내게 베트남 사회를 더 깊이 들여다보게 만든 출발점이었다.
1. 가족은 삶의 중심
베트남 사람에게 가족은 단순한 혈연이 아니라 ‘삶의 뿌리’다. 집은 세대가 함께 모여 사는 공간이고, 설날(Tết)이나 조상 제사는 가족의 연대를 확인하는 가장 큰 의식이다. 특히 부모에 대한 효(hiếu)와 형제 간의 의리(nghĩa)는 어릴 때부터 교육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타지에서 일하더라도 명절이면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가고, 가족의 결정이 개인의 선택보다 더 우선되는 경우도 많다.
2. 그러나 젊은 세대의 결혼관은 달라지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가족을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젊은 세대는 결혼과 이혼에 대해 매우 실용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베트남은 전통적으로 결혼을 신중히 결정하는 사회였지만, 최근 10년 사이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결혼은 선택, 행복이 우선’이라는 가치관이 뚜렷해졌다.
이혼에 대한 사회적 비난도 예전보다 훨씬 약해졌다. 과거엔 이혼이 ‘가족의 수치’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행복하지 않으면 끝내면 된다”는 생각을 openly 말하는 젊은층이 많다. 특히 여성이 경제적으로 독립하면서 남성 중심의 결혼 구조가 더 이상 절대적이지 않게 된 것도 큰 변화다.
3. 이혼의 현실적 배경
베트남의 이혼율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호찌민, 하노이 등 대도시에서는 결혼 5년 이내 이혼율이 30% 이상이라는 통계도 있다. 그 이유는 다양하지만, 대표적인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
- 경제적 부담 : 신혼부부가 양가의 지원 없이 스스로 가정을 꾸리기 어렵다.
- 문화적 차이 : 도시-농촌 출신 간 결혼에서 생활방식·가치관의 차이가 크다.
- 독립된 여성상 :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며 ‘참고 사는 결혼’ 대신 ‘새로운 삶을 선택하는 용기’를 택한다.
- SNS와 개방된 연애문화: 외도·소통 부재 문제로 갈등이 심화되기도 한다.
4. 베트남식 ‘가족애’의 진짜 의미
이런 변화 속에서도 베트남 사람들이 가족을 중시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그들은 “가족은 인생의 시작점이자 돌아갈 곳”이라고 믿는다. 단지, 그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을 뿐이다. 부모와 자식이 따로 살아도, 이혼 후에도, 서로의 생일과 제사에는 꼭 연락을 하고, 조상제사 때는 함께 모인다. 즉, 결혼 제도는 바뀌어도 가족의 정(情)은 여전히 깊다.
5. 전통과 현대의 사이에서
베트남 사회는 지금 ‘가족의 가치’와 ‘개인의 행복’ 사이에서 새로운 균형점을 찾고 있다. 이혼을 두려워하지 않는 건 가족을 가볍게 여겨서가 아니라, '진짜 가족애는 형식이 아니라 서로의 행복을 존중하는 것'이라는 새로운 인식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는 이런 말이 있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남이 된다.' 그만큼 부부의 관계는 가깝지만, 동시에 가장 쉽게 멀어질 수도 있는 인연이라는 뜻이다.
베트남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이 나라는 혈연과 일촌 관계에는 놀라울 만큼 강한 끈이 있다.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 친척 간의 유대는 정말 깊다. 하지만 부부관계만큼은 그 끈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결혼이 개인의 선택으로 시작된 만큼, 유지 또한 개인의 행복에 따라 결정된다고 보기 때문일 것일까? 그래서일까? 베트남에서의 결혼은 ‘끝까지 함께 살아야 하는 의무’가 아니라, ‘서로의 행복이 겹치는 동안 함께하는 동행’에 더 가깝다.
그 현실을 보고 있노라면, 가족과 사랑의 의미가 시대마다, 문화마다, 그리고 사람마다 다르게 변해간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