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인들의 조용한 숨결, 봉산사(鳳山寺, Phụng Sơn Tự 풍선뜨)
[베트남 사람이야기]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이 가장 종교적인 이유 5가지 - YouTube
푸미흥에 지인을 만나러 가던 길, 호아마이 정류장 근처. 항상 내리던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었는데 낯설다. 주위를 살피면 익숙한 위치를 찾던 중, 도심의 소음 속에서 문득 붉은 담장과 녹색 기와지붕이 시야를 스쳤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鳳山寺(Phụng Sơn Tự)’라는 금색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호찌민 1군에서 우연히 이런 사원을 마주할 줄은 몰랐다.
정문 양쪽의 둥근 창문, 옛 벽돌 건물과 대비되는 붉은색 기둥은 이 사원이 적어도 수십 년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적 공간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사원 앞길을 건너면서 다시 한 번 뒤돌아본 풍경은 도심의 흐름 속에 ‘사원만의 시간’이 따로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1. 고요 속으로 들어가는 길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작은 뜰이 나온다. 옅은 향 냄새가 바람 사이로 흩어지며 은은하게 코끝을 스쳤다. 앞쪽으로 보이는 중앙 건물은 붉은 벽과 장식적인 목조 조각으로 가득했다. 이 조각들은 대부분 중국 남방계 사원에서 볼 수 있는 양식으로, 베트남의 도교, 불교, 민간신앙이 한데 섞인 ‘혼합 사원’의 특징을 그대로 드러낸다.
2. 도교사원 속의 부처님
본당으로 한 걸음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정면 중앙에 놓인 작은 금빛 부처님 상이다.
높게 모셔진 여타 신상들과 달리, 이 부처님은 유리 상자 속에 단정하게 자리하고 있다. 마치 이 사원의 깊숙한 중심에서 조용히 사람들의 마음을 받아주는 존재처럼 보였다. 부처님 앞 양쪽에는 작은 보살, 선인(仙人) 형상의 도자기 인형들이 줄지어 서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부드러운 표정으로 합장하거나, 보시물(곡식·과일·물·지혜의 도구 등)을 손에 들고 있다.
이러한 구성은 베트남 남부의 사원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배치로, ‘부처님 앞에서 인간 세상의 선행과 공덕이 모인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즉, 이 보살들과 선인들은 사람들이 드리는 바람·행복·선의(善意)를 부처님에게 전해주는 존재이자, 기도를 부드럽게 받아주는 일종의 ‘중간자’ 역할을 한다.
이 사원이 도교, 불교, 민간신앙이 섞여 있는 공간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 장면은 더욱 흥미롭다. 여기 모셔진 부처님은 전통 불교 사원의 법당처럼 웅장한 형태가 아니다. 대신 현실적 소원에 귀 기울이는 ‘생활 신앙의 부처님’으로 자리한다. 사람들은 이 앞에서 조용히 향을 피우고, ‘오늘 하루 무사하기를’, ‘가족이 아프지 않기를’, ‘장사에 행운이 깃들기를’ 하며 소박한 기도를 드린다.
부처님과 그 앞의 작은 보살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이 풍경은 종교적 위계보다는 사람의 일상에 가까운 친밀함을 담고 있다. 그래서일까? 여기서는 경건함보다도 오히려 ‘따뜻한 마음의 온도’가 먼저 느껴진다.
3. 중앙 제단 : 봉산사의 심장부
안쪽으로 들어가자, 가장 먼저 눈길을 잡아끄는 것은 세 개의 큰 향로가 놓인 제단이었다. 황동 향로에는 오래된 시간의 흔적이 묻어 있었고, 그 뒤로는 복잡하고 정교한 금색 목조 장식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었다.
바로 이 공간이 봉산사의 중심이며, 사람들이 가장 많이 기도하는 곳이다. 그 뒤 제단에는 베트남 도교 사원에서 매우 자주 등장하는 세 신이 자리하고 있었다.
관우(Quan Công / 關公) : 의로움, 정의, 사업의 보호
재신(財神) : 재복, 이익, 상업 번영
천후(Thiên Hậu) : 가족·항해·여행의 수호
붉은 배경과 금빛 신상, 그리고 촘촘한 목재 조각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완성된 예술 작품 같았다.
4. 양쪽 벽면 : 용과 호랑이의 상징성
본당 양옆에는 용과 호랑이를 그린 대형 벽화가 있다. 이 그림은 전형적인 남부 도교 사원의 상징으로, 악령을 쫓고 공간의 기운을 지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특히 용은 물과 하늘을 다스리는 신성, 호랑이는 산과 땅의 수호자를 상징한다.
제단이 있는 곳과 통로들 천장에 매달린 나선형 향(향권)들이 시선을 사로 잡았다.
이 향은 오랫동안 태우기 위해 고안된 구조로, ‘기도의 시간이 길게 이어지기를 바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연무가 천장 쪽으로 서서히 올라가는 모습은 그 자체로 시간의 흐름을 느리게 만들어 준다.
5. 보조 제단 : 여러 신을 품은 남부 사원의 특징
풍선사의 매력은 ‘중앙 제단’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양쪽 복도와 측면 공간에도 각기 다른 신들을 위한 작은 제단이 있었다. 한곳에는 천수관음국(千手觀音)이 떠오르는 다팔신像이 있었고, 그 아래에는 작은 등잔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또 다른 공간에서는 베트남 민간신앙에서 중요한 ‘태세(太歲)’ 신을 위한 제단도 볼 수 있었다. 태세는 한 해의 운세와 충돌을 막는 존재로, 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향을 피운다.
이렇게 다양한 신들을 한 사원 안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베트남 남부 지역 사원의 가장 큰 특징이다. 사람들이 정해진 교리를 따르기보다 실제 삶에 필요한 소원들을 ‘이곳저곳에 담아내는’ 방식으로 신앙이 발전한 것이다.
6. 사원을 나서며
사원을 나오며 다시 한 번 외벽을 바라봤다. 차와 오토바이가 끊임없이 지나가는 거리와 달리 사원은 그 안에서만큼은 조용하고, 묘하게 따뜻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이곳은 관광객을 위한 화려한 명소가 아니다. 대신 사람들의 기도, 걱정, 바람 같은 아주 현실적인 마음의 무게를 고요히 담아내는 공간이다.
우연히 발길이 이끈 이 사원에서 나는 잠시 멈춰 서서 호찌민의 ‘또 다른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소음과 속도의 도시 속에 숨어 있는, 조용한 숨결 같은 공간.
봉산사는 그 조용한 숨결을 아주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