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물건의 나라’, 베트남은 ‘이야기의 나라’
한국 사람에게 국보를 떠올리라 하면, 많은 이들이 자연스럽게 한 장면을 떠올린다. 반가사유상,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 한쪽 다리를 올린 채 깊은 생각에 잠긴 얼굴. 그 하나의 형상 안에 한국 불교 미학과 사유의 깊이가 응축돼 있다.
그런데 베트남에는 이런 식의 ‘대표 유물’이 잘 보이지 않는다. 불상도 있고, 사찰도 많고, 역사도 깊은 나라임에도, '베트남의 반가사유상'이라고 부를 만한 단일 국보는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이 질문은 단순히 문화재의 수가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두 나라가 ‘국보를 바라보는 기준’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은 ‘물건’을 기억하는 나라다.
한국의 국보 체계를 보면 분명한 특징이 있다. 국보는 대부분 하나의 완성된 물건이다. 불상 하나, 탑 하나, 도자기 한 점, 전각 한 동. 각각에 번호가 붙고, 이름이 붙으며, 그 자체로 하나의 상징이 된다. '이 물건은 얼마나 정교한가?' '얼마나 오래되었는가?' '얼마나 원형이 잘 남아 있는가?'가 중요하다. 그래서 한국의 박물관은 이렇게 말한다. “이것이 국보 제 ○○호입니다.”
한국은 오랜 시간, 왕조의 계보와 사찰의 보호 속에서 ‘물건’을 중심으로 기억을 축적해 온 나라다. 그 결과 국보는 하나의 얼굴을 가진 존재로 우리 앞에 놓인다.
그럼, 베트남에는 왜 그런 ‘대표 유물’이 없을까?
이 질문에 흔히 따라붙는 설명이 있다. 전쟁이 많아서, 파괴가 심해서, 유물이 남기 어려웠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 설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만약 유물이 적었다면, 오히려 하나 남은 유물을 더욱 집요하게 보호하고 국가의 상징으로 떠받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베트남은 특정 불상 하나, 특정 유물 하나를 국가 정체성의 얼굴로 세우는 방식을 선택하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하다. 베트남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 남아 있는가’보다 ‘무엇이 이어져 왔는가’였기 때문이다. 베트남은 ‘물건’보다 ‘맥락’을 보존해 왔다.
베트남의 국보급 유산을 떠올려 보면 공통점이 있다.
흥왕 사원 유적지, 탕롱 황성, 후에 왕궁 유적군, 미선 유적, 82기 진사 석비....
이들은 하나의 물건이 아니다. 장소이며, 기록이며, 시간의 층위가 쌓인 공간이다.
베트남은 이렇게 묻는다. '이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보다 '이것이 어떤 기억을 이어 주는가?'
불상 하나보다 그 불상을 모셨던 산과 길, 그 길을 오르내리던 사람들, 그 안에서 반복된 의례와 믿음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베트남의 문화유산은 유리 진열장 안에 놓이기보다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다.
불교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드러나는 차이
이 차이는 불교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한국에서 불교는 왕조 문화와 미술을 이끈 중심축이었다. 불상은 신앙의 대상이자, 국가의 얼굴이 될 수 있었다.
반면 베트남에서 불교는 국가 운영의 중심이 아니었다. 국가는 유교로 운영되었고, 불교는 민간의 삶을 위로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 결과 불상은 존중받았지만, 국가 정체성을 대표하는 단일 상징으로까지 끌어올려지지는 않았다.
한편, 반복된 파괴는 ‘선택’을 강화한 조건이었다
중국 지배, 몽골 침입, 명나라 수탈, 프랑스 식민, 전쟁의 역사... 이 모든 경험들은 베트남이 ‘원형 보존된 물건’보다는 ‘흐름과 기억’을 중심에 두는 방식에 더 익숙해지게 만드는 한 조건이 되었다. 즉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관점을 더욱 분명히 만든 배경이 되었다.
베트남은 사라진 물건을 애도하기보다, 사라지지 않은 이야기를 붙잡는 쪽을 선택했다.
물건의 나라, 이야기의 나라
한국은 '이 물건은 얼마나 완벽한가'를 묻는 나라다. 반면 베트남은 '이 이야기는 어떻게 이어져 왔는가'를 묻는 나라다. 그래서 한국의 국보는 하나의 얼굴을 갖고 있고, 베트남의 국보는 여러 겹의 기억을 품고 있다.
그래서 베트남에는 반가사유상이 없다. 베트남에 반가사유상 같은 국보가 없는 이유는 만들지 못해서도, 지키지 못해서도 아니다. 굳이 하나의 물건에 모든 의미를 담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베트남은 완성된 형상보다 흐름을, 단일 상징보다 이야기를 선택해 왔다.
그래서 베트남의 사원과 유적은 조용하고, 화려하지 않으며, 대신 오래된 시간을 그대로 품고 있다.
다음에 베트남의 유적지를 마주하게 된다면, 이렇게 물어보는 편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이곳에는 어떤 이야기가 쌓여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