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불장난 하면 밤에 오줌 쌉니다

낙엽을 태우며 나를 정리하던 저녁들

by 한정호

베트남 이곳에 살면서 정말 소중하고 고마운 일이 하나 있다. 아침저녁으로 낙엽과 쓰레기를 쓸어 담고, 마음 놓고 불을 지를 수 있다는 점이다.


해가 저물기 시작할 즈음이면 매장 주변으로 나간다. 옛날 싸리빗자루로 인도와 매장 앞 낙엽들을 쓸어 모은다. 처음에는 딱 내 매장 앞만 정리하려고 했는데, 하다 보면 어느새 도로 쪽으로, 인도 끝까지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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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건 낙엽들이 쓰레받이에 모일수록 주변이 점점 하얘진다는 사실이다. 지저분했던 자리가 정리되면서 드러나는 바닥을 보면 이상하게도 희열 같은 게 올라온다. 청소를 하면서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게, 나 스스로도 조금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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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진짜 마지막 기쁨은 따로 있다. 모아 둔 낙엽 더미에 불을 붙이는 순간이다. 불꽃이 붙고,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걸 한참 멍하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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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교과서에 나왔던, 피천득의 「낙엽을 태우면서」처럼 거창한 생각을 하는 건 아니다. 그저 이렇게나 쌓여 있던 것들이 저렇게 잘 타주는 게 고맙고, 불씨가 벌겋게 마지막까지 살아 있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다.


서울 어디에서 이런 장난을 할 수 있을까? 이런 느낌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는 공간이 과연 있을까 싶다. 인천에 계신 부모님 밭에 갔을 때도 내가 제일 신나 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 불질이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아버님은 꼭 말씀하셨다. “조금씩만 태워라.” 헬기로 감시도 하고, 불이 커지면 바로 누군가 와서 뭐라 한다고.


참, 크고 많아 보이던 것도 결국 한 줌의 재로 쪼그라든다. 정리가 된다는 말이 어울릴까?

그렇게 나는 낙엽을 태우며 멍하니 서서 어쩌면 나를 정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얼마나 더 이런 불장난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니 오늘 밤에 오줌을 싸게 되더라도 이 순간은 즐기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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