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라도 이번이 마지막이지 않을까?

이제 내가 같은 생각을 한다

by 한정호

초등학교 4~5학년쯤이었을 것이다. 서울 망원동에 살던 시절, 어머님은 생닭을 잡아 한강에 뿌리는 제사를 지내셨다. 내가 일찍 죽을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 때는 잘 몰랐다. 왜 그런 제사를 지내는지, 왜 그렇게까지 불안해하시는지. 그저 어른들이 하는 일이라고, 묻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의 장면도 또렷하다. 아침에 등교하려고 집을 나서면, 어머님은 집으로 다시 들어가지 않으셨다. 약 200미터쯤 되는 골목 끝까지, 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 계셨다. 가끔 뒤를 돌아보면 손을 흔들고 계셨다. 매번 그랬다. 하루도 빠짐없이. 나중에야 그 이유를 들었다. '혹시라도 이 번이 마지막일까 봐.'


그렇게 아들이 일찍 죽을까 봐 걱정하던 분이, 나는 십수 년을 해외로 떠돌며 살아도, 단 한마디의 불평도 하지 않으셨다. “혼자 있으면 몸도 마음도 걱정이다. 들어와서 가족들이랑 살아라.” 그 말이 전부였다. 붙잡지도 않았고, 다그치지도 않으셨다.


매주 월요일 아침, 안부 전화를 드리면, 그저 멀쩡한 목소리 하나로 만족하시는 것 같았다. 가끔 전날 술을 많이 마시고 조금 늦게 일어나 전화를 드리면, 어머님은 바로 알아차리신다.

“어제 술 먹었구나. 그래도 전화 왔으면 됐다. 힘들면 더 자고…"

"네 목소리 들었으면 됐다.”

그 말 한마디에, 괜히 마음이 놓이면서도 괜히 마음이 아파진다.


그렇게 그렇게 세월은 아무 말 없이 흘러왔다. 오늘도 또, 한 해의 마지막 날이다. 이곳 시각으로 밤 10시. 한국 시간으로 자정이 되면 '땡' 시간에 맞춰 또 전화를 드릴 것이다. 이 날만큼은, 12시까지 안 주무시고 기다리시는 날이다.

요즘은 거꾸로 어머님 생각이 든다. ‘혹시라도 이번이 마지막이지 않을까?’ 불안한 생각이다. 하지 말아야 할 생각인 것도 안다. 하지만 지금껏, 그렇게 50여년이 넘도록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이어왔듯이, 앞으로도 그렇게 연을 이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해를 마치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를 걱정해 주고 살펴주는 분이 있어, 이 한 해도 이렇게 평안하게 넘어가는구라'라고. 그리고 한편으로는 나 역시 그렇게 누군가를 걱정하고 살피는 사람으로 평안한 하루하루를 만들어갈 수 있기를 조용히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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