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아니라 책임으로 평가받아야 할 정치에 대하여
요즘 정치 뉴스를 보다 보면서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당명을 바꾸면, 그동안의 책임도 함께 사라지는 걸까?'
'국민의 힘'이 당명 변경을 검토한다는 보도가 보면서 이 질문이 자연스레 따라붙었다. 단순한 이미지 쇄신 차원의 리브랜딩인지, 아니면 더 근본적인 법적·정치적 책임을 피하기 위한 선택인지에 대한 의문이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의 당선이 만약 무효화되는 상황을 가정할 때, '대선 과정에서 사용된 선거비용은 어떻게 되는가?' '정당 자체의 책임은 어디까지 이어지는가?'라는 질문도 따라왔다.
이 의문은 결코 과도한 의심이 아니다. 민주주의에서 정당은 이름이 아니라 책임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당명은 바뀔 수 있어도, 법적 실체는 사라지지 않는다
정당의 당명 변경은 법적으로 ‘이름만 바꾸는 것’에 가깝다. 법인격은 유지되고, 조직도 유지되며, 재산과 채무 역시 그대로 이어진다. 개인이 개명한다고 해서 과거의 채무나 법적 책임이 사라지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만약 대통령 당선이 무효가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그 선거에서 보전받은 비용에 대한 반환 문제는 당명 변경 여부와 무관하게 그대로 남는다. 반환의 주체가 후보 개인이냐 정당이냐의 세부 논쟁은 있을 수 있지만, 정당이 실질적 선거 주체였다는 사실 자체는 지워지지 않는다.
정당해산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헌법이 정당을 해산시키는 기준은 명칭이 아니라 목적과 활동, 그리고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태도다. 조직, 지도부, 강령, 자금 흐름, 정치적 행태가 이어진다면 이름만 바꾼 정당을 ‘완전히 새로운 정당’으로 보기는 어렵다. 헌법재판소가 반복해서 강조해온 것도 바로 이 ‘실질 판단’의 원칙이다.
'그렇다면, 당명 변경은 무엇이 되나?'
이 지점에서 당명 변경은 법적 해법이 아니라 정치적 선택이 된다. 문제는 그 선택이 책임을 지기 위한 출발점인지, 아니면 책임을 흐리기 위한 기술인지다.
정치사에서 당명 변경은 여러 번 있었다. 때로는 시대 변화에 맞춘 자연스러운 진화였고, 때로는 과거와의 단절을 선언하기 위한 상징적 행위였다. 그러나 그 모든 경우에서 공통적으로 요구된 것은 ‘말이 아닌 행동’이었다. 책임 있는 인사 정리, 권력 구조의 변화, 의사결정 방식의 개혁, 잘못에 대한 분명한 인정이 동반되지 않는 당명 변경은 오래가지 못했다.
용서는 선언으로 얻어지지 않는다
국민 그리고 나는 생각보다 훨씬 냉정하다. 이름이 아니라 태도를 본다. 슬로건이 아니라 이후의 선택을 본다.
정치에서 가장 오해받는 단어 중 하나가 ‘국민의 용서’다. 용서는 요구한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따라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충분한 시간과 행동이 쌓였을 때, 국민이 스스로 판단하는 결과에 가깝다. 선거를 앞둔 술책처럼 보이는 변화는 오히려 불신을 키운다. 반대로 불리해 보이더라도 책임을 인정하고, 내부를 정리하고, 스스로를 해부하는 과정은 시간이 지나 평가받는다. 진정한 혁신은 늘 불편한 선택에서 시작된다.
당명을 바꾸는 것으로 끝난다면, 그것은 회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당명을 바꾸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아 반성과 내부 자정, 구조적 혁신까지 이어진다면, 그때 비로소 국민은 판단할 것이다. 이 정당을 다시 한 번 지켜볼 가치가 있는지, 아니면 역사 속 한 장면으로 넘길 것인지를.
결국 용서할지 말지는 정당이 결정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 선택권은 언제나 국민과 내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