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의 판단과 국민의 납득 사이
선고가 나왔다. 그리고 나는 이 판결을 두고 누군가를 비난하기보다,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법은 판결을 내렸고, 그 판단은 법의 언어로는 완결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한 명의 국민으로서 이 판결을 받아들이는 주체라는 사실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나는 법의 대상이기 전에, 법의 주인이다
우리는 흔히 말한다. “법이 판단했으니 따르는 수밖에 없다.”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면 중요한 한 문장이 빠진다. 나는 법의 대상이기 이전에, 법의 근거가 되는 국민이다. 법은 나보다 위에 있는 절대자가 아니다. 내가 맡긴 권한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이다. 그래서 판결 앞에서 침묵하는 것은 중립이 아니라 책임을 내려놓는 선택일 수 있다.
납득하지 못한다는 감정도, 국민의 몫이다
나는 이 판결을 두고 쉽게 “옳다”거나 “틀리다”라고 말하지 못했다. 대신 마음 한쪽에 남은 건 묘한 거리감이었다. 결론보다 과정이 잘 보이지 않는 느낌. 이 감정을 외면하는 건 쉽다. “전문가들이 알아서 했겠지”라고 말하면 된다. 하지만 그 순간, 법은 점점 나와 상관없는 것이 되고 나는 점점 법의 외부인처럼 밀려난다. 납득하지 못한다는 감정조차, 나는 국민으로서 감당해야 할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법이 설명되지 않을 때, 국민의 생각은 무거워진다
법은 판결로 말한다. 하지만 국민은 설명을 원한다. 왜 이런 판단이 나왔는지, 다른 선택은 왜 가능하지 않았는지, 권한은 어디까지 집중되어 있었는지. 이 설명이 충분하지 않을수록, 나는 점점 법을 멀리서 바라보게 된다.
'존중은 남지만, 신뢰는 유지하기 어렵다.'
그리고 이 거리감은 어느 날 갑자기 불신이라는 이름으로 튀어나온다.
책임을 묻기 전에, 책임을 돌아본다
이 글을 쓰며 나는 나 자신에게 묻게 된다.
'나는 과연 이 구조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는가?'
'판결이 나올 때만 분노하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무관심해지지는 않았는가?'
'제도의 문제를 말하면서도, 그 제도가 유지되도록 방관한 쪽은 아니었는가?'
법을 비판하기 전에, 나는 먼저 국민으로서의 나를 돌아보게 된다.
그래서 다시 이 문장을 붙잡는다
법보다 위에 있는 것, 딱 하나. 국민이다.
이 문장은 누군가를 압박하기 위한 구호가 아니다. 나 스스로에게 하는 경고에 가깝다. 법을 감시하라는 말이 아니라, 법을 내 일로 받아들이라는 말이다. 판결이 나왔다고 해서 생각까지 끝낼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때부터 국민의 책임은 시작된다.
PS. 이 글을 마치며, 예전에 연재했던 《검찰공화국 시리즈》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당시에도 문제는 ‘누가 잘못했는가’가 아니라, 국민 위에 놓인 권력이 제어되지 않는 구조였다. 지금의 거리감 역시, 그 연장선 위에 있는 감정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