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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호 Jun 06. 2024

간섭이 행복을 주는 아침

베트남 쌀국수 Pho로 시작하는 하루

 아침 샤워를 위해 욕실에 들어섰는데 띵동 메시지 알림 소리가 들린다. 또 일상적인 광고 메시지이겠거니 하면서도 내용을 확인하려 모바일을 열었다. "Han ơi! Chị Dung mời hôm nay ăn phở nhé, giờ đi ghé vô đó luôn nhé" 라는 메시지가 떠 있었고, 고맙게도 한글로 번역된 메시지가 밑에 따라왔다. "안녕 한!  오늘은 Dung 씨가 나를 쌀국수 먹으러 초대했습니다. 이제 쌀국수 식당에 들르자" 아침에 KNG Mall 광장에서 운동을 하시는 아주머니들 중 한 분의 메시지이다. 

 샤워도 해야 하고, 어제저녁 먹은 그릇도 씻고, 잠을 자는 동안 열심히 물속에서 돌림빵을 당했을, 옷가지들도 널어놓고 나가야 하는데...  며칠 전 Dung 아주머니가 이번 주에 쌀국수를 사기로 했으니, 호치민에 가지 않으면 아침 같이 먹자 했던 말씀이 떠올랐다. 메시지를 보낸 Hoa와 Dung, 두 아주머니는 아침 운동을 하는 그룹 내에서 서로 파워경쟁을 하는 사이이다. 아마 오늘 내가 그곳에 가지 않으면 내일 아침 Dung 아주머니는 나를 쬐려 보고 베트남어로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막 하면서 핀잔을 줄지도 모른다. 비누칠 없이 간단히 물로 샤워를 하면서 잠을 깨우곤, 후다닥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세탁기의 옷을 널고는 쌀국수 가게를 향해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새로 오픈한 쌀국수 가게.... 쇠고기 포라는 글귀가 재밌다
쌀국수 매장 내부 전경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 쌀국수도 내가 먹고 싶은 곳에서 천천히 먹으면 될 것을' '아침 시간마저 쫓기듯 움직여야 하는 이유가 뭘까?' 아주머니들만 모여 앉아 있는 곳에 남자 녀석 한 명만, 그것도 외국인이 끼여 현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쌀국수를 먹고 있는 모양새를 생각하니 '꼴 사납다'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론 누군가가 나를 생각해 주고 챙겨주려 한다는 생각에 므흣한 미소가 생긴다. 


 도착해 보니 8명의 아주머니가 앉아 있는데 벌써 식사가 끝나가고 있었다. 모두들 드신 것 같은데 그냥 가시자고 하자 '빨리 앉으라'며 식당 직원을 불러 쌀국수를 빨리 가져오라고 재촉한다. 못 이기는 사람들이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처럼. 하라면 해야 하는 그런 사이인 것이다. 고등학생 시절 아침을 먹다가 다 먹기가 싫어 일어나려 하자 엄마는 "지각해도 되니 다 먹고 가야 한다"시며 앉으라고 하셨다. 그땐 반항해 보지도 못하고 그릇을 다 비우고서야 식탁에서 일어나 학교로 향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마지막 남은 한 조각의 치킨을 '남기면 버린다'며 나 먹으라고 앞으로 밀어 놓으셔도 '그럼 버리죠. 저 더 못 먹으니 엄마 드세요'라며 다시 어머님께 넘길 정도로 반항아로 커 버렸지만, 그래도 엄마의 간섭과 배려가 고맙고 그립다. 가족들과도 떨어져 생활하고 있는 지금. 나를 간섭하고 행동을 제약할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있음에 감사해야겠다.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8명의 잡담을 들으며, 혼자 먹고 있는 나를 쳐다보는 눈들을 느끼며 그래도 행복한 쌀국수 한 그릇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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