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정호 Jun 06. 2024

선택할 수 있는 능력

기회는 능력이 있을 때에야 빛을 발한다

 책 사는 것에 인색하지 않은 편이다. 대학시절 한 교수님께서 '책을 구입하는데 절대 주저하지 말라고 하셨던 것이 기억난다.' “혹시 책을 사서 그때 읽지 않으면 헛 돈 쓰는 것이 아닌가?'라는 고민은 하지 마라. 그 책을 보고 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면 그것은 언젠가 자신에게 필요한 책이 될 것이고 만약 그 책을 사놓지 않으면 나중에 생각이 나도,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게도 되고, 나중에 꽂혀 있는 책을 보다가 ‘아, 이 책도 있었구나’라고 생각해 그 책을 다시 꺼내 읽게 되면 그게 다 자신의 자산이 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지금 내 방에는 중국/베트남과 관련된, 유통과 서비스에 관련된, 책들이 짐짝처럼 널려있고 꼽혀있다. 가끔씩 한 번 정리를 해 처리해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한 편으론 이 책들을 다시 읽을 수 있다는 생각에 선뜻 버리지를 못하고 있다. 그 기분대로 책들을 읽으면서 하나둘 정리해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대학시절 어머님이 내게 운전면허증은 필수이니 군대 가기 전에 따 놓으라고 재촉을 하셨었다. 나는 '지금 운전이 왜 필요해요?' '다음에 진짜 운전하게 되면 따면 되지!'라고 하면서 미루다 어머님의 등살에 필기를 두 번이나 떨어지고서야 운전면허증을 땄다. 군대 가기 며칠 전, 전 날 음주를 하고 실기 면허시험장에 갔다가 운이 좋게 합격을 하고 그 자리에서 면허증에 필요한 사진을 찍어 운전면허증의 나의 얼굴은 붉그스름하다. 한국에 가면 아이들과 와이프가 같이 할 수 없는 시간을 이용하여 혼자 드라이브를 하면서 사찰이나 박물관 등을 찾아다닌다. 자동차와 운전. 나만의 힐링을 위한 반려자가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내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항상 대비하고,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도록 노력하자'는 마음가짐 하나를 항상 새겨 담고 있다. 중국에서 사드 때문에 밀려 나와 직장을 잃고 있을 때, 한 일 년 동안은 자격증을 따면서 공부에 한동안 집중하였다. 국제 무역사, 관광통역안내사(베트남어), 소비자 상담사, 다문화 상담사, 심리분석사, 한국사 능력검정시험 1급 등 자격증만 몇 개나 된다. 당시 주변의 지인들은 바로 사용하지도 않을 거면서 웬 공부를 그렇게 하냐고 묻곤 했다. 나는 웃으며 나중에 늙어서 일을 하던, 봉사를 하던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가장 쉽게 증명해 주는 것이 자격증이니 따 놓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물론 대학시절의 무역사, 관광통역 안내사, 소비자 상담사 등은 적어도 일 년 또는 수년에 걸쳐 준비를 한 것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시간을 만들어서, 내가 게을러서 버려진 시간들을 이용했다고나 할까? 그렇게 매일 조금씩 나눠 준비해 온 것 들이다. 실은 언제 이 자격증들을 사용해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게 기회가 주어 졌을 때 능력이 부족해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해서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나를 자유롭게 하는 것 중의 하나이다.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베트남어)

 올해 대학을 졸업한 따님이 이제야 운전면허증을 따고 싶다고 한다. 얼마 전엔 "아빠 제가 TOEIC 만점 받으면 선물 뭐 해주실 거예요? 다음 달에 시험 봐요"라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운전면허와 TOEIC은 대학 들어갈 때부터 방학기간 등을 이용하여 따놓자고 얘기했던 것들이다. TOEIC은 유효기간이 있어서 지금 본다는 변명을 들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만점 받으세요!'라고 간단히 메시지와 함께 아빠의 마음을 담아 '자기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이미 결정된 상태이다. 능력이 안 되어 선택받지 못하는 생활이 아닌, 능력이 되어서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삶이 되도록 해야 할 텐데...'라고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요즘 내 모습을 되돌아보면 우리 딸과 같아지는 것 같다. 일이 닥쳐야 그때서야 몸을 일으킨다. 지금은 준비하거나 실천을 해야 하는 때인데도 엉덩이가 의자에 붙어 떨어지질 않는다. 게을러진 것이다. 딸에게 한 말을 다시 읽어 보면서 나를 반성해 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