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이라기보다 위험을 피하는 방식
베트남 매장 운영에서 배우는 것
컵이 비어 있다. 테이블이 지저분하다. 새로 들어온 직원은 그저 쳐다만 보고 있다. 한국에서 매장을 해 본 사람이라면 그 순간 몸이 먼저 움직인다.
손님이 들어와 문 앞에 서 있다. 한국에서라면 어느 직원이라도 먼저 본 사람이 움직일 상황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종종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주방쪽 직원들은 외부에서 손님이 들어 오는걸 보고도, 멀뚱멀뚱 쳐다보며 아무 행동도 없다. 사장이 말하기 전까지는. 아직 주방에 요리 주문 오더가 들어오지 않았으니.
베트남에서 매장을 운영하다 보면 한국 사람이라면 한 번쯤 같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왜 저 직원은 저걸 보고도 그냥 있지?' 처음에는 답답하고 화도 났다.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게으른 것 아닐까?'
'일부러 일을 피하면서 눈치만 살피는 건 아닐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이것은 게으름의 문제가 아니라 일을 바라보는 방식의 차이라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1. '내 일이 아니다'라는 경계
베트남 매장에서 자주 보게 되는 모습이 있다. 주방 직원은 주방 일만 한다. 홀 직원은 홀 일만 한다. 손님이 테이블을 떠나고 그 위에 접시가 남아 있어도, 주방 직원은 그걸 보고도 절대 치우는 것을 도와주지(?) 않는다. 그건 홀 직원의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눈에 보이면 그냥 한다'는 문화가 있다. 업무에서 '내 일, 니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역할이 분명히 나뉘어 있다. 내 일이 아닌 것을 먼저 했다가 “왜 네가 그걸 했냐?!”는 말을 듣는 경험을 해본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경계 안에서만 움직이게 된다.
2. 먼저 했다가 책임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또 하나 중요한 이유가 있다. 베트남 사람들은 먼저 행동하는 것보다 지시를 기다리는 것에 익숙하다. 이것은 단순히 소극적인 성격 때문만은 아니다. 많은 조직에서 먼저 했다가 문제가 생기면, “누가 하라고 했냐?”는 말을 듣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시키면 하자.' '괜히 먼저 했다가 문제 생기면 어떡하지?'
이것은 게으름이라기보다, 위험을 피하는 방식에 가깝다.
3. 그래서 매장은 ‘지시 시스템’이 된다
이런 환경에서는 매장이 자연스럽게 이렇게 돌아간다. 사장이 말한다. 직원이 움직인다. 사장이나 매니저가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처음에는 답답했다. '왜 이렇게 비효율적일까?' '왜 스스로 움직이지 않을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게 되었다. 이것이 이곳의 기본 작동 방식이라는 것을. 결국 이것이 노동 효율성을 저하시키고, 업무 효율도 떨어지고 반면 인건비는 올라 있다는 것을. 하지만 현실이 그 이상이하도 아니다.
4. 차선의 해결 방법
예전에 일본 롯데리아가 운영하던 법인을 인수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매뉴얼을 보고 솔직히 놀랐다.
매장 곳곳에 체크리스트가 붙어 있었다. 시간별 행동 규칙이 있었다. 직원별 행동 매뉴얼이 있었다.
그때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이러니 창의적인 일이 안 나오지.'
그런데 베트남에서 매장을 운영하다 보니, 문득 그 생각이 떠올랐다.
'아… 그래서 그렇게까지 했구나.'
그렇게 내가 차선책으로 생각해 내 것이, "왜 먼저 안 하냐”고 화를 내고, 질타를 하는 것이 아닌, 먼저 해야 할 일을 미리 정해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손님이 나가면 테이블을 바로 닦는다. 손님이 없으면 컵과 수저를 정리한다. 손님이 들어오면 물을 먼저 가져다 준다.
이렇게 행동 기준들을 계속해서 상황을 파악하고 매뉴얼에 추가해 나가는 것이다. 직원에게 얼굴을 붏일 일이 줄어들고, 매장의 분위기가 꽤 달라진다. 현지인들은 기준이 생기면 그 안에서는 비교적 잘 움직이기 때문이다.
5. 결국 내가 배우고 있는 것
베트남에서 매장을 운영하며 나는 직원들을 바꾸는 법보다, 내가 보는 방식을 바꾸는 법을 배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익숙했던 방식이 여기에서는 통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래서 가끔은 이렇게 생각한다. 이 사람들은 게으른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일하고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그 차이를 이해하는 순간, 조금 덜 화가 나고, 조금 더 웃게 된다. 그리고 매장은 내 눈에도 조금 더 당연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