쩌런의 등롱은 왜 조금씩 어두워졌을까?

베트남에서 화교 세력이 약해진 역사적 이유

by 한정호

1. 쩌런에서 느끼는 묘한 질문

한국에서 베트남 관광을 위해 찾아온 후배와 함께 5군에 있는 불교, 도교 사원과 성당 그리고 시장을 돌아보았다. 등롱이 걸린 거리, 중국어 간판, 향 냄새가 가득한 사찰들. 어디선가 광둥어가 들리고, 약재상과 금은상들이 이어진다. 잠깐 착각이 든다.

'여기 베트남 맞나?'

그 중심에는 쩌런(Chợ Lớn)이 있다. 한때 동남아에서 가장 큰 차이나타운 가운데 하나였던 곳이다. 그런데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또 다른 질문이 생긴다.

'그렇게 강했던 화교 세력은 지금 어디로 갔을까?'

사실 베트남에서 화교의 힘이 약해진 데에는 몇 번의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


2. 한때 남베트남 경제의 중심이었던 화교

프랑스 식민지 시대와 남베트남 시기까지만 해도 화교의 경제력은 매우 강했다. 특히 사이공과 쩌런에서는 거의 모든 상업 네트워크가 화교 상인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대표적인 분야가 있었다. 쌀 무역, 설탕, 직물, 약재, 금융, 도매시장 들이었다.

예를 들어 빈떠이 시장을 만든 인물도 중국계 상인 곽담(Quách Đàm)이었다. 당시 쩌런에서는 이런 말이 있었다. '베트남인은 논을 경작하고, 화교는 그 쌀을 팔아 돈을 번다.' 과장이 조금 섞였겠지만 화교 상인 네트워크가 얼마나 강했는지 보여주는 말이다.

20260309_110434.jpg 빈떠이 시장內 곽담 동상

3. 첫 번째 변화 – 1950년대 국적 정책

1950년대 남베트남 정부는 화교 사회에 중요한 정책을 시행한다. 화교에게 베트남 국적 취득을 요구한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경제의 상당 부분이 외국 국적 상인에게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교 상인들에게 두 가지 선택이 주어졌다.

'베트남 국적 취득' 또는 '사업 제한'

많은 화교가 결국 베트남 국적을 취득했고, 이때부터 화교 사회는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4. 결정적 사건 – 1975년 통일

베트남 역사에서 가장 큰 전환점은 1975년 통일이었다. 북베트남이 남베트남을 통일하면서 경제 체제도 완전히 바뀌었다. 사회주의 경제로 전환되면서 대형 상업 네트워크, 민간 무역, 사기업이 강하게 통제되기 시작했다. 이 변화는 특히 상업 중심이었던 화교 사회에 큰 충격이었다.


5. 1978년 화교 이탈 사건

화교 세력이 약해진 가장 큰 사건은 1978년 화교 이탈(Boat People) 사건이다. 당시 베트남과 중국의 관계가 급격히 나빠졌다. 그리고 정부는 일부 화교 상인들을 경제적·정치적으로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사업 제한, 재산 국유화, 이주 압력 등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많은 화교들이 홍콩, 대만, 싱가포르, 캐나다, 미국 등으로 떠났다. 이 시기 수십만 명의 화교가 베트남을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6. 텅 빈 상가와 조용해진 쩌런

이 사건 이후 쩌런의 모습도 크게 달라졌다. 한때 활기 넘치던 상가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많은 상점이 문을 닫았고 상업 네트워크도 무너졌다. 쩌런은 여전히 차이나타운이었지만 예전같은 경제 중심지는 아니었다.


7. 다시 돌아온 시장 경제

1986년 베트남은 도이머이(Đổi Mới) 정책을 시작했다. 사회주의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를 도입한 것이다. 이때부터 개인 사업, 무역, 시장 경제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부 화교 상인들도 다시 경제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8. 그러나 예전 같지는 않다

지금도 쩌런에는 화교 문화가 강하게 남아 있다. 사찰에서는 향이 타고, 등롱이 거리 위에 걸려 있다. 하지만 예전처럼 동남아 경제를 움직이는 거대한 화교 상인 네트워크는 아니다. 지금의 쩌런은 역사, 문화, 관광의 의미가 더 강해졌다.


천후궁에 들어가면 천장에 거대한 향이 매달려 있다. 만불사에서는 수천 개의 불상이 벽을 채우고 있다. 빈떠이 시장에서는 여전히 중국어 간판이 보인다. 그러나 이 풍경은 과거의 경제 권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남겨둔 문화의 흔적에 가깝다.

20260309_101601.jpg 천후궁 내부 전경

쩌런은 여전히 살아 있는 차이나타운이지만 그 중심은 이미 역사 속으로 조금 이동했다. 쩌런의 등롱은 여전히 밝다. 다만 그 빛의 의미가 조금 달라졌을 뿐이다. 예전에는 경제 권력의 상징이었다면, 지금은 도시가 지나온 시간을 보여주는 불빛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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