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을린 신, 살아있는 신앙

by 한정호

호치민 5군, 쩌런 특유의 붉은 간판과 중국어 글씨들 사이를 지나 자연스럽게 한 사원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을 넘는 순간, 공기가 달라졌다. 향 냄새가 코를 엄습했다. 그건 단순한 향기가 아니었다. 연기였다. 천장 아래에 얇게 깔린 안개처럼, 공간 전체를 덮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수많은 신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신들의 얼굴이 모두 검게 그을려 있었다.

20260309_100854.jpg Ba Thien Hau 도교 사원 전경
20260309_100917.jpg
20260309_100933.jpg Ba Thien Hau 사원 내부 천후 신상
20260309_102515.jpg 천후궁 전경, 호치민시 5군
20260309_101601.jpg 천후궁내 천후 신상

처음에는 순간적으로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이건 일부러 이렇게 만든 걸까?’

'어딘가 무섭고 엄숙해 보이려고 하는 것일까?'

솔직히 난 시커먼 흉상이 무섭게까지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저 부처님이 아니라는 것에 만족했던 기억이다.


한국에서 보아온 사찰의 기억이 떠올랐다. 불상은 대체로 밝다. 금빛이거나, 나무의 색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고,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다. 즉 사찰에서 신은 ‘보존’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곳의 신은 달랐다. 얼굴은 짙게 그을려 있었고, 표면은 매끈하지 않았다. 시간이 쌓인 흔적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어딘가 낡아 보였고, 처음에는 그 낡음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 이유를 찾아보고 나니 수긍이 간다.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향' 때문이었다. 그곳에서는 하루 종일 향을 피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끊이지 않는다. 수십 년, 어떤 곳은 백 년 가까운 시간 동안 그 연기가 신상을 덮는다. 그 결과가 바로 그 색이다. 검게 변한 것이 아니라, 쌓인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그을린 얼굴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건 기괴함이나 더러움이 아니었다. 시간이었다. 사람들은 그 곳 신 앞에서 무언가를 빈다. 아이의 행복을, 가족들의 건강을, 장사의 성공을 그리고 사람과의 인연을. 그 기도의 순간마다 향 하나가 더해진다. 그 작은 연기가 하루, 이틀, 일 년, 십 년을 지나, 신의 얼굴 위에 쌓인다.


한국에서는 신을 ‘깨끗하게’ 모신다. 여기서는 신이 ‘쌓인다’. 기도가 쌓이고, 시간이 쌓이고, 사람들의 삶이 쌓인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오래된 신일수록 더 힘이 있다고 믿는다. 새것보다 오래된 것이 더 신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날 이후로 사찰 안에서 검게 그을린 신을 보아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오히려 생각하게 된다.

'이 신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을 지나왔을까?'

'얼마나 많은 소원이 이 얼굴 위를 스쳐 갔을까?'


검은 색은 더러움이 아니다. 그건 사람들이 남긴 시간이다. 그리고 그 시간은 지금도 계속 쌓이고 있다.

Ba Thien Hau 도교사원 내부 전경


매거진의 이전글티셔츠 하나에서 시작된 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