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베트남 장사는 계약보다 관계가 먼저일까?

종이보다 사람을 믿는 시장의 방식

by 한정호

호치민에서 장사를 하다 보면, 처음에는 이해되지 않는 순간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계약서를 쓰지 않는다. 조건을 명확히 정리하지 않는다. 심지어 돈이 오가는데도 문서 하나 없이 거래가 이루어진다. 처음에는 불안하다.

‘이게 맞나?’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하지?’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다른 방식이 보이기 시작한다.


베트남의 장사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사람을 보고 한다. 물건을 보기 전에 사람을 보고, 조건을 따지기 전에 관계를 본다.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약속을 지키는 사람인지, 문제가 생겼을 때 도망가지 않을 사람인지. 이 판단이 끝나야 비로소 거래가 시작된다. 그래서 처음 거래는 어렵다. 낯선 사람과는 쉽게 시작하지 않는다. 조건이 좋아도 망설인다. 대신 한 번 관계가 만들어지면 이후는 놀랄 만큼 빠르게 진행된다. 계약서보다 말 한마디가 더 강해진다.


한국에서는 문서가 신뢰를 만든다. 계약서가 있고, 조건이 명확하고, 문제가 생기면 법으로 해결한다. 그래서 관계가 조금 약해도 거래는 유지될 수 있다.

하지만 베트남은 다르다. 법과 문서가 모든 상황을 해결해 주지 않는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실제 현장에서 체감하는 효율도 높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관계를 쌓는 방식이다. 이 관계는 단순한 친분이 아니다. 시간이다.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커피를 마시고, 서로의 상황을 알고, 작은 약속을 지켜가면서 만들어진다. 그 과정이 쌓이면 그 자체가 계약이 된다. 그래서 베트남에서는 거래가 끊기는 이유도 단순하다. 신뢰가 깨졌을 때다. 한 번 속이거나, 약속을 어기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을 피하면 그 관계는 끝난다. 그리고 그 사람과의 장사는 다시 이어지기 어렵다.


이 구조를 이해하고 나면, 관제묘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비는지 비로소 이해가 된다. 돈을 벌게 해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달라는 기도. 배신당하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 결국 장사의 핵심은 돈이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장사를 잘하는 사람의 기준도 다르다. 조건을 잘 따지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잘 유지하는 사람. 관계를 오래 이어가는 사람. 그 사람이 결국 오래 살아남는다.

물론 이 방식이 항상 효율적인 것은 아니다. 속도는 느리고, 감정이 개입되고, 때로는 손해를 보기도 한다. 하지만 한 번 관계가 형성되면 그 안정감은 생각보다 크다.


그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계약을 통해 사람을 대신하고, 이곳은 사람을 통해 계약을 대신한다. 어느 쪽이 더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하나다. 이곳에서 장사를 하려면, 먼저 계약서를 준비할 것이 아니라 사람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관계의 중심에는 늘 보이지 않는 기준이 하나 있다. '신뢰'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다. 이렇게 사람을 중시하는 사회인데, 계약서는 오히려 더 복잡하고 구체적이다. 일부에서는 이것이 프랑스 식민지 시절의 영향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행정과 법 체계가 문서 중심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더 궁금해진다.

'관계를 중시하는 문화와, 문서 중심의 시스템은 어떻게 함께 작동하고 있는 걸까?'

관계로 움직이는 사회 위에, 문서로 기록하는 시스템이 얹혀 있는 이 구조는 과연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 걸까? 다음 글에서는 이 부분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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