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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호 Jun 12. 2024

말 안 듣는 직원, 바로 잘라!

베트남의 수평적 관계구조

 얼마 전 지인 한 분이 부탁을 하셨다. 호찌민에 사무실도 있고 집도 있는데, 이곳의 둘째 부인(?) 집에 왔다 갔다 하신다. 한국에서 핸드폰을 하나 선물로 보내려고 하는데 여기서 받아야 하니 공감 매장주소를 사용해도 되겠냐 하셔서 기꺼이 도와드리기로 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서야 내게 UPS로부터 이메일이 날아와 확인해 보니 기기의 사양이나 구매가 사용처 등을 베트남어로 설명해서 보내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 고객께 내용을 전달해 드렸더니 이 번엔 당신은 베트남어도 못하고 영어도 잘 못하니 우리 매니저를 시켜 답신을 만들고 핸드폰을 받을 수 있게 해 달라는 요청을 하는 것이었다. ‘아! 도와준다고 했다가 번거로운 일이 생겼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보도 모두 한국어로 되어 있는 것이니 어차피 내가 해야 할 일이고, 다시 매니저를 통해 두 번 작업을 해야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도와주기로 했으니 끝까지 도와드려야지’라고 마음을 다잡고 매니저에게 작업을 요청했다. 

 다음 날 오후가 되어도 보고가 없길래 매니저에게 어제 부탁한 작업 했냐고 물어보니 그제야 “자기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는 한 마디를 던지는 것이었다. 기가 찼다. ‘자기 일도 아닌데 부탁한 내가 잘못이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못하겠다고 보고는 해야지! 이 녀석아!’라는 생각을 했지만 입에는 올리지 않았다.  돈치킨의 주방장이 떠올랐다. 내가 무언가 주문을 하면 더 많이 생각하고 뭔가를 해 보려는 친구이다. 내용을 설명하니 바로 내 옆에서 메일 쓰는 것을 도우며 UPS에 메일을 보내고 담당자와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다음 날 고객은 매장에 와서 핸드폰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물어보았다. "매니저가 미루는 것 같아 주방장에게 부탁해서 처리를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리자 내게 바로 “직원이 말을 안 들으면 난 바로 잘라요. 그런 직원 데리고 일 못하지!”라고 하는 것이었다. 

 

 물론 내 직장의 직원이 나의 말을 철석같이 따르고 시키는 대로 해 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이곳의 직장 문화는 한국의 직장 문화와 다르다. 베트남은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업무에 있어서 수평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특히 내게 정식으로 주어진 업무가 아니면 그것을 강요할 수도, 복종하고 따르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베트남에 왔으니 무조건 현지인들이 원하는 대로만 이끌어 나갈 수도 없다. 최대한 그 간격을 좁히려고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고, 내가 원하는 방향과 달리 움직일 때, 그들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내가 화를 내는 빈도도 작아지고, 화나는 크기도 작아질 수 있다. ‘일도 제대로 안 하고 빈둥빈둥 놀고 있으면서 시키는 일도 안 하네’가 아니라, ‘이 일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니 저 친구가 도와주면 정말 고마운 것이고 안 도와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라고 생각하면 그뿐인 것이다. 


 일전에 코로나 백신을 맞아야 하는지를 가지고 우리 딸과 언쟁이 있었다. 내 딸마저도 내 마음대로 못하는데 어찌 보면 아무런 관계도 아닌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도리어 내가 화를 낼 수 있는 자격은 없는 것이다.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도움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마음에 공감하고 소통하는 것이 베트남에서 현지인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한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요청하고 도와주면 감사해하고, 그게 모두 행복한 삶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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