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정호 Jun 22. 2024

베트남 출입국 심사가 긴 이유

목바이 베-캄 국경 출입국 사무소 실태

 어제 비자 연장을 위해 목바이 비자런을 다시 한번 진행하였다. 

 정말 다행이었다. 며칠 전부터 단골손님 중 한 분이 비자연장을 해야 하는데 같이 가면서 도와달라고 하셨다. 전 날 저녁에 다시 날짜를 확정해 달라 하셔서 스케줄을 보다 깜짝 놀랐다. 바로 오늘이 비자 만기일 이었던 것이다. 지난번 5월 7일에 다녀온 관계로 마음속엔 그저 7월 초 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우연히 고객 덕분에 불법체류자가 되는 것을 면할 수 있었다. 그분들 중에 한 분께 200만 동을 빌렸다. 바로 오늘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하는데 현금이 없었기 때문이다. 


 6시 40분 숙소를 나오려는데 가슴이 쿵쾅거렸다. 어제 급히 200만 동을 빌린 후 매장 현금을 챙기지 않고 들어왔던 것이다. 비용 계산에 들어갔다. 모자란다. 매장에 다녀와야 하나??? 고민 끝에 그냥 호찌민시로 가기로 했다. 해 보는 거지 뭐. '베트남으로 들어만 오면 어떻게든 되겠지! 할 수 있다'는 생각 하나로.


 이 번에도 편도로 금호 버스를 이용하였다. 이 번엔 버스 안에 와이파이도 되지 않았고, 중간에 주유소에서 차량을 환승하는 절차로 전보다는 불편했다. 뭔가 오늘 아침부터 삐그덕 거리는 느낌이 든다. 그래도 지난번 일정에서 진행이 너무 잘 되어 즐거워하다가 소매치기를 당한 경험이 있어, 차라리 속으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 안에서 계산해 보니, 호찌민으로 들어보는 버스도 일반으로 타고, 금호버스 요금도 3만 동이 줄었는데 정상대로만 되어야 딱 호찌민 시내까지 들어오는 금액이었다. 괜한 계산에 빠졌다. 매장에 다녀왔으면... 그랬다가 시간이 지체되어 아침 버스를 놓치면 저녁까지 지체될 것이고 그럼 푸미로 돌아갈 수도 없이 호찌민에서 하루를 보내야 한다... 등등 여러 생각들이 겹쳤다. 하지만 결론은 내 순간의 선택은 최선이었고, 모험을 할 용기가 있다는 것 자체가 대견스럽다. 


 베트남 출경, 캄보디아 입국을 진행하였다. 그런데 캄보디아에서 절차 하나가 더 생겼다. 소위 체온 체크였다. 체온기를 이마에 대는 척하더니 2만 동을 달라고 한다. "왜?"라고 물으니, 검역관 아주머니는 빙그레 웃기만 한다. '알면서... 안 내면 못 나가지, 메롱'이라는 표정으로. 2만 동을 꺼내주고 캄보디아에 입국하였다. 캄보디아 출국사무소에 10만 동을 내어 주고 캄보디아를 빠져나왔다. 출국사무소 직원은 출국 스탬프를 찍는데 드는 비용이라고 설명한다. 

 못 사는 나라라고 너무 티 내는 거 아냐! 비자 발급에 40불, 통과료 12만 동을 캄보디아에 헌납하고 다시 베트남 입국사무소로 향했다. 


 오늘 베트남으로 입국하는 관광객이 많은 지 내부가 꽉 차있다. 4개의 입국심사 부스가 있다. 그런데 1 부스는 운영을 하지 않고 3개 부스만 심사관이 앉아 심사를 하고 있다. 일반 입국자는 1곳만 이용 가능하고 다른 두 곳은 관광객 전용이었다. 그런데 기둥 뒤에 선 사람일 숨바꼭질이라도 하듯이 머리만 내밀었다 숨었다 하면서 사람들에 손짓을 한다. 인당 15만 동이면 신속패스를 진행시켜 주겠다며. 몇몇 사람들은 저렇게 뒷 돈을 주면서 입국신청자를 찾고 있었다. 신청자가 발견되면 그 사람의 여권과 서류를 들고 사용하지 않는 4번째 부스롤 통과해 우리 일반이 부스로 다가와 여권을 들이민다. 그러면 심사관은 아무 일 없는 듯 그 여권을 먼저 처리하고 내어준다. 뒷 돈을 낸 사람은 그렇게 유유히 출국 심사대를 빠져나간다. 


 순간 화가 나 내 앞사람의 숫자를 세어 보았다. 18명.

 10분이 지나 다시 세어보니 16명, 또다시 10분여를 지나 세어보니 14명...

 내 앞에는 인도 부부와 한 여성이 있었다. 남편 되는 사람은 계속 뭐라 구시렁대며 심사관 쪽으로 갔다가 왔다가 하기만 한다. 그런데 그 가족이 심사를 받기 바로 전, 제복을 입은 사람이 여권 몇 개를 들고 아주머니 앞을 지나 심사관 데스크 앞으로 가려하자, 등을 툭툭 치더니 뒤로 가라는 손짓을 한다. 그 제복을 입은 청년은 "My Boss..."라고 하자, 그녀는 "Your Boss..."라며 관광객 라인으로 가라고 손짓을 했다. 순간 장면이 멈춘 듯하더니 그 청년은 뒤로 물러났다. 몇 분 후에 보니 정말 다른 부스 앞으로 나아가 결국 그 절차를 취하고 있다.

 세계 어디든 아주머니의 파워는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내 앞의 대기자 수를 세기 시작한 후 1시간 20분이 지나서야 나는 입국을 할 수 있었다. 입국장에서만 총 대기시간이 2시간이 넘었다. 

 '이러니 못 사는 나라라는 소리를 듣지' '이러니 후진국이라는 말을 듣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베트남은 캄보디아 보다는 낫다며 으스대는 것인지 10만 동의 통과료를 받지는 않았다. 

 속으로 생각했다. 

 '차별받으면서 2시간을 기다리게 했으면서 무슨 통과료를 받을 생각을 해'

 '모두에게 10만 동씩 받으면서 줄 서는 것은 차별하지 않는 캄보디아가 더 평등한 거 아냐'라는.


 입국을 하고 나니 힘이 완전히 빠져 버렸다. 11시 10에 이곳에 도착했는데 나온 시간은 오후 2시 10분, 세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것도 줄곧 서서. 아침부터 먹은 것이라곤 버스에서 준 생수 한 병. 

 그런 걱정을 할 때가 아니었다. 호찌민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를 타려면 20만 동이 필요한데 남은 돈은 16만 6 천동이다. 체온 검사료가 나가버렸기 때문이다. 

 구걸을 해야 했다. 호찌민으로 들어가는 관광버스 기사에게 남은 자리가 있는지를 물어보고 남은 돈을 모두 보여주며 탑승을 요청해야 했다. 이층 침대버스였다. 한 기사가 16만 동밖에 없다고 하는 나를 쭉 쳐다보곤 '거짓말'이라 하면서 "안 된다"라고 한다. 몇 천동까지 보여주며 정말 이게 다라고 하자 웃으며 올라오라고 한다. 그렇게 버스에 올라타니 기사는 고맙게도 생수까지 하나를 건네주었다. 

  목을 축이고 누우니 절로 잠이 왔다. 깜박 잠이 든 이후 안내하는 사람이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하기에 시간을 보니 4시 30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금호랑 같은 방식이구나 생각은 들었지만, 오는 길은 보통 두 시간이면 되는데 참 어렵게 왔나 보다 싶었다. 갈아탄 버스를 타고 다시 50분 후 버스에서 사람들이 모두 내리기 시작했다. 주변 간판을 원래 얘기했던 시내 1군이 아닌 10 군이다. 버스 기사는 친절하게도(?) 소형 밴을 타면 1군에 데려다줄 것이라고 한다. 무료라며 환히 웃으며. 6 천동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저 아는 곳으로 이동하는 수밖에. 소형 밴에 3명이 다시 탑승을 하였다. 10분 정도가 되었을까? 아침에 출발했던 여행자 거리 쪽이 보이기 시작했다. 살았다. 


 오전에 매니저가 내 통장으로 보내 준 100만 동이 입금되었는지를 확인해야만 한다. ATM 기기를 찾아 출금을 요청하였다. 

 '드르르륵' 지폐를 세는 소리만으로 안도의 숨이 쉬어진다. 다시 푸미로 오는 버스를 탔다. 

 '정말 잔인한 6월이다. 몸도 마음도 지치는 것 같아. 왜 이러고 있지?' 

 며칠 전 누나가 한 말이 떠올랐다. "정호야 그러지 말고 제발 들어와라. 왜 혼자 거기서 그 고생을 하고 있니?" "진짜 그냥 돌아와라...."

  

 형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바로 한국 식당으로 오라고. 같이 저녁이나 먹고 들어가 쉬라고.

 육개장과 고기를 시켜놓고 있었다. 형수님과 두 딸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눈이 아직도 낫지 않아 부어 있는데도 소주를 마다하지 않고 마셨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매장에 잠시 들른 후 바로 숙소로 돌아왔다. 

 침대에 몸을 던졌다. 자기 전 유튜브를 보면서 잠을 청하는데...


  내 어깨에 무거운 짐이 있어도 함부로 내려놓지 말아라 (youtube.com)

 

 고마운 사람들이 있고, 짐이라고 생각할 직원들이 있는데...

 내일 아침엔 일직 일어나 매장에 가보아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베트남 이웃사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