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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호 Jul 22. 2024

애증의 베트남 입국 첫인상

사회주의 공화국 Vs 거긴 괜찮다

 처음 베트남에 입국한 날이 2004년 1월이니 이제 20년이 지났다. 중국에서 본사 복귀 명령을 받아 서울에 온 후 일주일 만에 다시 베트남으로 파견 발령을 받은 것이다. 베트남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 상태였다. 물론 베트남어를 하나도 할 수 없었다. 파견 통보를 받고서야 정보들을 찾기 시작했다.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이고 당시 경제적 통계를 살펴보니 중국보다 약 20년 이상은 뒤처져 있는 듯했다. 중국도 한국에 비하면 경제력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지만, 수도인 베이징에서 주재원 생활을 하면서 그런 객관적인 지표보다는 훨씬 안정되고 상위층의 현실을 접했기 때문에 베트남도 경제 수도인 호찌민시로 가는 것이니 그래도 내 생각보다는 낫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가질 뿐이었다. 


 이로부터 딱 3년 전, 2001년 1월 김포국제공항

 중국 베이징으로 파견을 나가는 날, 가족들은 모두 공항에 같이 있었다. 아버님이 마지막 인사를 하시면서 "중국 오지에 가서 어떻게 생활할지 걱정이다. 건강 잘 챙기고..." 하시면서 눈시울이 붉어지셨다. 그 당시 베이징을 '오지'라고 하셨던 것이 생생하다. 

 중국의 생활을 시작하고 1년 후 와이프와 딸아이가 들어와 같이 살면서 부모님들의 걱정도 많이 사그라드신 것 같다. 1시간이면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거리이고, 베이징에 오셔서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도 보시고, 환경들을 보셨다.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아버님의 중국, 베이징에 대한 걱정은 많이 사그라드셨지만 그래도 서우두 국제공항의 출입국 사무소의 공안들을 보는 것과 길거리의 공안들을 보는 것 만으로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위압감을 갖는 것은 언제나 그대로였다. 


 베트남으로 향하는 날에는 부모님은 공항에도 오시지 않으셨다. 전날 밤, 부모님 댁에서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공항에는 와이프와 딸아이만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버님의 표정과 말씀에 놀랐다. "베트남은 그래도 괜찮다. 가서 열심히 살아보거라"라고 덤덤하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아버님은 1967년에 항공정찰대의 조종사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셨다. 일 년간의 파병생활 이후 복귀하셔서 나를 나으신 것이다. 미군의 보호를 받은 항공대에 근무하셔서인지 일 년의 참전기간 동안 베트콩을 한 번도 마주친 적은 없다고 하셨다. 정글 정찰 중 널려 있는 옷가지를 발견하고 폭격 지원을 요청하신 것이 다라고 하셨다. 바나나 나무 옆에 연못에서 휴식을 즐기는 모습의 사진 등이 내가 기억하는 아버님의 참전 사진들이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아버님의 부대원도 참전 중 사망하신 분이 있다. 적군과 대치해서 총알이 빗발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어찌 전쟁터가 편안하고 평온했을까? 


 그래서 난 아버님의 덤덤한 자세에 더 놀란 것이다. 중국의 베이징으로 갈 때 눈물까지 보이시면서 '오지'에 가서 생활하니 조심하라 하시던 분이 "거긴 괜찮다"라는 말씀이 믿기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적어도 20년은 뒤처져 있는 나라인데... 사회주의 국가이고 '도 이머 이'라는 개혁개방 정책이 1990년대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실현되었으니 이제 10년밖에 되지 않은 나라이다. 


 뭔가 있을 것 같다는 아련한 안도감을 갖고 베트남행 비행기에 오른 것 같다. 


 호찌민시 탄손녓 국제공항에 도착한 때는 어두컴컴한 저녁으로 기억한다. 비행기에서 내려 활주로에서 버스를 타고 출입국 심사대로 향하면서 곧바로 무서움을 느꼈다. 출입국 심사원은 한국의 경찰 같은 느낌이 아닌 베트남 전쟁 영화에서 본 듯한 군인 그 자체였다. 당시에는 발꿈치를 들어 허리에 총이라도 차고 있지 않는가 쳐다볼 엄두도 내지 못했지만, 꼭 그랬을 것 같았다. 지금이야 안에도 쳐다보고 컴퓨터 화면도 쳐다보는 여유를 갖고 총은 없는 것을 알았지만. 그날 밤엔 늦게 도착해서였는지 호텔에 도착한 후 바로 취침에 들어간 것으로 기억한다. 공포의 밤 기억으로.

베트남 공안들(경찰)

 아침을 맞았다. 회사로 데려다 줄 이노바 차량에 앞자리에 앉아 시내를 보기로 했다. 도로 위에는 온통 오토바이들이다. 어젯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들의 눈빛과 얼굴이 공안의 눈빛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스쳐 눈이 마주치면 환하게 웃는 여성과 아이들의 모습이 어젯밤의 공포감(?)을 사르르 녹게 만들었다. 

 우리와 얼굴색이 비슷해서, 체구가 우리보다 작아서? 그래서 받는 느낌의 것이 아니었다. 공안들의 얼굴색과 체구도 길가의 사람들과 같은 것이었으니. 가장 인상 깊었던 첫인상은 수많은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얼굴이다. 티 없는 환한 웃음과 거부감 없이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는 모습들이다.  

해맑고 순수한 아이들의 모습

 그렇게 시작한 베트남 생활이 벌써 15년째이다. 애증의 베트남, 베트남 사람들.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일종의 거부감과 두려움, '거긴 괜찮다'라는 아버님의 말씀이 아직도 함께 하는 듯하다. 그들과 함께 하면서 느끼고 배웠던 사람이야기를 시작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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