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자본 창업의 달인들
인생에는 세 번의 큰 기회가 있다고 한다. 내겐 몇 번이나 기회가 왔을까? 세어보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이미 수많은 기회를 얻고 복을 받고 살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또 기회가 오길 바라는 것은 욕심일까? 지금까지의 행운과 기회에 감사하고 이젠 주어진 기회를 내 힘으로 지켜나가야 할 때인 듯하다. 지금이 내게 주어진 가장 큰 기회인 것 같다.
그런데 '인생에 세 번의 기회가 있다'는 말은 한국 사람에만 통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보면 한국 사람들은 베트남 사람들과 비교해 보면 훨씬 수동적이고, 보수적인 삶을 살아오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든다. 내 나이 또래의 평범한 직장인들은 살아오면서 자신만의 사업을 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것 같다. 그저 다니는 직장에 충실하고, 안정된 삶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제 명퇴니 정년퇴직을 맞고나 맞이할 준비를 하면서 개인 사업체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것도 자발적이라 하기보다는 경제적 이유에 의해 떠밀린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베트남에선 모두가 돈을 벌기 위해 기업을 하나씩 차리고 있는 듯하다. 베트남 주택 구조와 실제 집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를 보면 바로 이해가 될 것이다. 베트남 일반 서민 주택의 1층은 대부분 가게나 식당으로 운영 중이다. 자기가 직접 운영을 하던 임대를 주던, 규모가 크던 작던 모두 상업시설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밤이 되면 베트남의 도로 옆 인도는 어느새 간이식당, 커피숍이 되고 전체가 푸드코트가 되어 버린다.
카페나 식당을 만드는 사람은 남녀의 구분도 없고, 나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친구과 합작으로 소규모 투자를 하여 식당을 차린 경우도 있고, 커피와 간단한 음료만을 만들어 학생들에 제공하는 카페도 있다. 온 가족이 자전거 하나로 옥수수를 파는 경우도 있다. 베트남에선 남녀노소 누구나 사업체 사장이 되는 꿈을 갖고 있고 그 연습을 하고 있는 듯하다.
얼마 전 돈치킨의 주방에서 근무하던 직원이 아침에 가판 매장을 만들어 장사를 한다고 하여 방문한 적이 있다. 그 친구에게 매장을 열기로 한 이유를 물었다. 친구가 사무실을 차렸는데 그 앞 인도에 자리가 있고, 아침에 출근하는 사람들이 지나가는 도로여서 장사가 될 듯해서 매장을 만들었다는 말에 놀랐다. 그냥 가능성을 보고 실천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이런 가판 매장을 만들려고 했으면 절대 이런 위치에 하지 않았을 것이다. 도로 주변에 건물 하나 동그라니 서있는 이곳에... 이것 재고, 저것 파악해 보고.... 게다가 '누가 한국 사람이라도 보면 쪽팔리지 않을까?' 등 가능성을 보는 게 아니라 리스크를 보기 때문이다. 이는 내 나이 또래의 한국분이라면 내 마음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몇 달 전 호찌민시에서 만난 21살의 일본 여성 사장에 놀라고, 위의 생각을 다시 한번 한 적이 있다. 그녀는 올해 혼자 베트남에 들어와 일식당과 바를 열고 운영을 하고 있다고 한다. 2년 전에 친구를 만나러 베트남에 놀러 왔는데 친구가 여기서 조그마한 바를 운영하고 있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작년에 들어와 식당과 바를 차린 것이다. 이제 나이는 21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베트남에 왔다가 사업을 해보고 싶어 다시 들어왔다고 한다. 마치 배낭여행을 온 젊은이처럼.
머리가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25살의 우리 딸은 지금도 취직 준비를 하고 있고, 18살의 아들은 진학을 준비하고 있는데... 젊은 나이에 무언가 꿈을 가지고 부딪혀 보고자 실천하는 용기와 노력에 경외감과 존경심마저 들었다. 식당과 바가 성공해서 저 웃음이 계속되길 기원해 본다.
처음에는 '넉넉하지 못한 집안 사정을 돕기 위해 장사에 뛰어든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도이머이 개혁개방 이후 돈에 흠뻑 빠져버렸다는 좋지 않은 이미지도 있었다.
하지만 볼수록 놀랍고, 부럽기까지 하다. 똑같은 유교 문화권에 있으면서도 너무나도 차이가 난다. 조선시대 사농공상으로 가장 상인을 미천하게 여겼던 결과가 이런 차이를 만들어 낸 듯하다. 하지만 공자는 충분한 인구와 백성들의 풍요를 정치의 기본 전제로 보았다. 종교화된 한국 유학이 원시유교인 공자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