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권적, 평등 문화에 익숙한 나라
베트남이라는 나라를 생각하면 사회주의, 여성 우위 사회라는 개념을 떠올려진다. 역사적으로 유교의 영향을 받아 가부장적 사회구조를 이루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는 배치된다. 사회주의 국가 성립 이후 남녀평등 사상이 고취되어 생겨난 모습일까? 아니다.
가끔 매장에서 젊은 직원들이 내게 하는 행동을 보면 ‘저게 기어오르는 것일까? 아니면 원래 베트남 사람들이 저렇게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라고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경우가 많다. “Hello Mr.Han”이라고 인사를 하면서 나를 툭 치고 가기도 하고, 어리광도 아닌 것이 뭔가 한국인에게는 썩 기분 좋지 않은 행동을 보이는 데 뭐라고 탁이 표현하기도 어려운 그런 행동들이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아르바이트생이 회식자리에서 내 앞에서 먼저 담배를 꺼내 주저 없이 피는 것을 보고 놀라기도 했다. 몇 번을 불러도 못 들은 척하다가 화가 나, 왜 불러도 대답도 없고 오지도 않냐고 하면 난 자기를 부르는지도 몰랐는데 왜 성질을 부리냐는 듯한 묘한 표정을 지을 때면 그냥 기가 막힌다.
그러다가도 점장과 매니저 그리고 직원들끼리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보면 나한테만 그러는 것 같지 않아 ‘사회주의 국가에서 배운 교육에 의해 평등하다는 생각으로 하는 행동인가?’라는 의문이 들곤 한다. 나이에 상관없이 삼촌과 조카 사이 같기도 하고, 형과 동생 사이 같기도 한 모습에 내가 어떻게 행동을 하여야 할지 주저하게 되는 경우들이 생기곤 한다.
한국인들은, 특히 한국 남성들은 군대 문화 경험이 있어서 상하관계가 너무 뚜렷하고 명령과 복종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기사들을 본 기억이 있다. ‘내가 지금 저 친구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가 그런 이유 때문일까?’라는 질문을 가져 본다.
물론 내가 그들의 생각과 행동방식을 알았다 해서, 내 기분이 좋아지거나 그들의 행동이 옳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들이 ‘그렇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니 ‘저런 어린것들이 나를 우습게 봐!’라는 생각 등으로 속상해하거나, 괜히 혼자 무시당했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오해는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게 현실 속에서 느끼는 감정들이다 보니 베트남 사람들이 이렇게 행동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알고 싶어 졌고, 몇 가지의 합리적인 이유들을 찾을 수 있었다.
베트남 왕조는 최대의 중앙통치 시대에도 지역별로 각 지방 세력이 군사조직과 군사력을 보유하고 나름의 통치를 하고 있었다. 베트남의 북부의 대월과 사운 참파왕국이 도시국가의 성격으로 대월의 침략에 시기적으로 적절히 결집되지 못해 쇠망한 것처럼, 베트남은 중앙집권에 의한 통치가 아닌 분권의 형태를 유지한 국가였던 것이다. 베트남 왕조는 중앙 집권적인 통치가 약한 상태였고, 지방의 세력가들이 사병을 보유하고 왕과 상대할 수도, 왕조를 교체하기도 한 그런 역사를 갖고 있는 것이었다. 결국 베트남은 유교의 사상과 통치체계를 수용하면서도 독자적인 중앙통치를 실현하지 못하고 지방 분권에 기반을 둔 느슨한 국가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 상황에서 완전한 상하관계가 아닌 병존의 관계가 성립된 것이다. 이는 역사 드라마에서 보이는 고대 고구려의 재가회의와 신라의 화백회의를 상상하면 될 듯하다. 신라의 화백회의에서 상대등이 상석에 앉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다섯 명의 대등도 모두 평등한 권한과 권위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현재의 베트남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베트남의 정치는 중국이나 북한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보이는 1인 독재 정치가 아닌 '공산당의 영도 아래 집단지도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베트남에서는 중국과 한국에서 보이는 전형적인 상하관계에 의한 유교적 질서가 아닌 평등에 기반한 상호 존중의 질서라고 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베트남에서는 수평적 공동 책임이라는 ‘베트남 특색의 사회주의’ 체제가 운영되고 있다.
한국 기업에서 결재를 진행하는 경우 ‘회람’이라는 절차가 존재한다. 해당 업무에 대해 관련 부처에서 내용을 확인하고 동의를 표하거나 일부 제안사항이나 유의사항들을 기입하여 실행부서에서 참고하게 하는 절차이다. 만약 어느 부서에서 반대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그 결재안은 반대 의견이 반영되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실무자 간 협의 및 조정을 통해 새로운 기안서를 올려 합의를 거쳐 최종 결정을 하게 된다. 회람의 경우는 서명이 없더라도 무시하고 결재가 이루어져 업무가 진행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베트남에서는 이런 상황이 불가능하다. 모든 관련 부서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결재 처리가 되어야 실행이 이루어지는 만장일치제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은 가정에서도 차별이 아닌 구별로 남녀 간의 역할과 지위를 인정하고 있었다. 유교문화의 특성이 강하여 가부장적인 부계제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유교적인 관습을 중시하는 국가였기 때문에 여성의 사회적 활동이 제약되고 그 역할이 가정 내의 가족보조 역할로 한정되어 왔다.
하지만 한편으로 베트남의 전통사회는 마을 공동체 내의 질서체계에 있어 아버지의 권한 못지않게 어머니의 역할도 매우 중시되어 왔다. 재산소유에 있어 부부별산제적인 현상은 여자의 가정 내 지위와 권한을 강화해 주었다. 가족 내 대소사를 결정함에 있어 어머니가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베트남의 경우 공동체문화를 중시한 결과 마을 내 혼인을 중시하였고 경험이 많은 어머니의 역할이 강조되면서 가정 내에서 여성의 지위가 강조되었다. 또한 공동체 내에서의 활동을 통해 여성의 사회적 참여가 보장되었다고 할 수 있다.
가족 내 여성의 역할 및 지위에 있어 베트남은 경험 많은 여성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유교문화권 내에서 여성의 지위라는 것은 한계를 가졌음에도, 상대적으로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그에 따른 지위를 가졌던 것이다.
베트남은 한국과 같은 유교권의 국가이지만, 역사적으로 문화, 생활의 측면에서 권력이 분산되어 운영되고 있으며, 남녀 간에도 역할과 권한이 분명히 부여되고 존중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었다. 어찌 보면 그렇게 분산되고 개별성을 인정하면서도 외세의 침입 등에 단결하여 극복하는 모습을 보면 더욱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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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화 베트남의 수평적 유교문화 (brunch.co.kr)
07화 베트남의 집단지도체제 (brunch.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