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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호 Aug 29. 2024

여유롭게 사시면 좋을 텐데...

자기 관리에 억눌린 아버님의 삶

 남들이 보기엔 최고이다. 언제가 시간 약속에 철저하고, 세상을 두루 다니셔서 누구보다 세상을 아시는 듯한 모습이시다. 하지만 옆에 있는 사람들은 마음이 편치 못하다. 


 모든 것이 그분의 표준에 맞아야 한다. 비행 일정이 있는 전날이면 모두가 텔레비전도 보지 못하고, 숨죽여야 하고, 음식도 절대 짜거나 매우면 안 된다. 누군가 감기기운이라도 있으면 독방신세가 되어야 하고, 음식도 같이 못하고, 수건도 따로 써야만 한다. 


 비행을 멈추신 지 30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두 분을 모시고 근거리 드라이브를 하게 되었는데 뒷자리에 앉으신 아버님은 "이제부터 2차선을 쭉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하셨는데 조금 가다가 내가 1차선으로 들어가려 하니 벌컥 화를 내신다. "2차선으로 가라 하는데 왜 차선을 변경하냐?"며. 화를 내신 것에 놀랜 것이 아니라 갑자기 들리는 소리에 놀랐다. 무슨 사고라도 난 줄 알고. 


 베트남으로 귀국하는 날 아침 식사를 마치고 '커피라도 한 잔 하고 출발을 할까?' 했는데 이것저것 계산을 하시더니 "조금 일찍 공항에 도착하더라도 지금 나가는 게 좋겠다" 하시며 나를 버스 정류장까지 배웅하시려고 아예 문 앞으로 나가신다. 공항철도를 타고 가도 되는데 굳이 당신이 알고 계시는 버스를 타고 가라시며 그곳 버스 정류장까지 따라 나오신다. 공항으로 가는 공항버스인 줄 알았는데 타고 보니 일반 시외버스였다. 내 캐리어가 작고 내가 맨 뒤자리에 앉아서 다행이었지, 중간 정도에 서게 되었다면 승하차하시는 분들께 계속 죄송하다며 캐리어를 치워드리느라 곤욕을 치를 뻔했다. 


 전 날 밤 아버님은 내게 2장의 편지를 읽어보라며 건네주시며 눈물을 글썽거리셨다. 전기료 아끼려고 콘센트도 하나하나 끄고 하면서 살고 있다시며. 저녁에 자기 전에 전기들 다 점검하고 주무신다고. 아끼려고. 

 그 마음이야 어찌 모르겠는가 마는 저러시는 모습이 더 마음 아프다. 왜 그러셔야 할까? 그렇게 멋지게 사시고, 자식들에게 벌써 물려주실 것들도 다 나눠주셨고, 지금도 사시는데 충분한데 왜 당신이 당신을 구속하고, 남들도 구속하면서 힘들어하시고 또 슬퍼하실까? 싶어 마음이 너무 아프다. 

 내가 술을 많이 먹어서 며느리에게 미안하다고. 가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다고도 하신다. 술을 먹어 와이프를 괴롭힌 건 아시는데 왜 내 마음은 이해를 못 하실까? 당신 안에 구속되어 사시기 때문이리라. 얼마 살 지도 모르고 남은 재산도 아들인 너 안 주고 당신에게 잘 한 누나나 사위 줄 지도 고민하고 있다고도 하신다. 그러면서 잘 살라고. 


 그렇게 충분히 존경받으시고, 자식들 손주들 사랑받으시면서 아직도 자기 표준에 구속되어 사시는 모습이 너무 안타깝다. 지금은 어머님도 주변 사람들도 그저 그 순간을 참으며 그렇게 사시는 것을 애처롭게 보고만 있다. '저것도 얼마나 할 수 있을까?'라며 애처롭게.


 이제 당신이 바뀔 것을 기대하지도 않지만, 당신 스스로 당신 자신을 너무 구속하지 않으셨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피는 못 속인다'라고 하는데 나도 그런 자기 아집과 고집이 있는 것을 알기에 나 자신도 무섭다.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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