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 만에 다시 착용한 안경이 주는 느낌
고등학교 2학년때의 일이다. 갑자기 눈이 뿌여지는 듯함을 느끼고 책도 잘 보이지 않았다. 엄마에게 "엄마 눈이 잘 안 보여요"라고 몇 번을 말씀드렸는데 "죽을병 아니다"라는 답변을 듣고 참고 학교를 다녔다. 그렇게 두어 달 학교를 다니다가 큰 누나와 안과를 찾게 되었다. "이렇게 될 때까지 왜 병원에 안 왔어요?"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큰 누나도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나고 나도 꽤나 속이 상했던 기억이다.
그렇게 공군사관학교를 나와 조종사가 되겠다는 꿈은 고 2 여름방학 기간 중에 완전히 무너졌다. 어머님은 지금까지도 그게 한(恨)이 되신 듯하다. 대학입시에 공사를 포기하고 철학을 공부하겠다고 하다 재수까지 하면서 종교학을 공부하겠다고 대학에 입학하였다. 어머니는 처음 엑시머 레이저 수술이 한국에 도입되자마자 내게 수술을 권하셨다. 주변의 사람들 중에는 "이 시술은 아직 검증되지 않은 것이니 10년 후에 시력이 완전히 망가질 수도 있어. 넌 마루타가 되는 거야"라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어머니는 "그때 네 눈이 다시 나빠져도 의학이 발달해서 또 수술해서 고칠 수 있을 거야"라며 수술을 권하셨고 수술을 진행하였다. 당시 레이저가 나의 눈을 파 내는 것이 내 눈으로 확인이 되었다. 레이저 칼로 내 눈의 일부를 잘라내듯이 손톱 깎는 듯이 조각들이 떨어져 나가는 것과 고기 타는 냄새를 지금도 기억한다. 그렇게 수술을 한 후 내 눈은 고 1 때의 1.5와 1.2 시력을 되찾았다. 어머니의 아들의 눈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한이 내 눈을 원래대로 돌려놓은 것이다.
그렇게 인생의 진로가 바뀌고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도 어머니는 내게 조종사 교육을 권유하셨다. 미국으로 가면 몇 년 조종 기술을 배워 자격증을 받을 수 있고, 한국에서도 조종사가 될 수 있다고. 하지만 난 바뀐 인생에 만족하면서 살아왔지만, 어머님의 마음속엔 고등학교 때의 내 꿈이 당신 때문에 깨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아직도 내 눈을 마음에 담고 계신 듯하다.
37년이 지난 요즘 눈이 나빠지는 게 느껴졌다. 한국에 다녀오면서 안과에 들렀다가 안경을 맞춰 가지고 들어왔다. 눈이 나빠진 것이 아니라 약해진 것이라고 한다. 소위 말하는 노안이 왔다고 한다. 거리가 바뀔 때마다 카메라의 초점이 자동적으로 바뀌듯이 자동으로 압력을 조절해야 하는데 그 힘이 떨어져 자동으로 조절을 못하고 눈을 찡그리거나 힘을 주면서 초점을 맞추려고 하면서 피로해진다는 것이 의사의 진단이었다. 이제 나도 늙은 거다.
노트북을 보면서 안경을 끼기 시작했는데 노트북이 얹혀 있는 탁자가 전체적으로 기울어 보인다. 안경이 비뚤어진 것인가 싶어 탁자에 올려놓고 보아도 안경은 멀쩡하다. 그럼 내 머리가 비뚤어진 것일까? 아니면 내가 지금까지 삐뚤게 세상을 보고 있던 것일까?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쳐간다. 한국에서 돌아오기 전 꾹꾹 눌러쓰신 아버님의 편지도 그렇고, 37년 만에 내 콧등에 올라앉은 안경이 내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