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정호 Oct 05. 2024

베트남 사람이 화를 낼 때

그들의 '기다림의 미덕'에 난 무시라고 생각하고 화를 내었네...

 주변의 베트남 사람들을 보면 비교적 온화하고 상대방에 매우 개방적이라는 인상을 갖게 된다. 그런데 거리에서 싸우거나, 화를 내고 싸우는 모습과 그들의 눈빛을 보면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운 느낌마저 든다. 소위 한국에서 말하는 살기가 느껴지는 것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어떨 때 화를 내고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렇게 표출하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공개적인 무시와 불명예를 당했다고 느낄 때 라고 한다. 베트남 사람들은 체면을 매우 중시한다.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을 공개적으로 모욕하거나 무시당하는 상황을 매우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비하하거나, 고압적인 태도로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행동은 그들에게서 큰 분노를 유발할 수 있는 것이다. 체면을 잃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문화적 배경 때문에, 가장 강한 감정적 반응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둘째는 가족에 대한 모욕이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가족은 매우 신성한 존재이다. 가족을 모욕하거나, 부모나 형제에 대해 무례한 말을 하는 것은 감정적으로 매우 민감한 문제이다. 그래서 만약 누군가가 가족을 경시하거나 무시하는 발언을 한다면, 이는 상대방의 감정을 격하게 자극하여 큰 화를 만들곤 한다. 베트남 사람들은 가족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매우 단호한 태도를 취할 때가 많으며, 그것이 우리의 눈에는 살기로 느껴질 수 있을 듯하다. 


 셋째는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차별을 당했다고 느낄 때이다. 직장이나 사회 내에서 자신이 공정하게 대우받지 못한다고 느끼거나, 특정 그룹이나 사람에 의해 차별을 받는다고 생각할 경우, 강한 불만과 화를 표출할 수 있다. 특히 경제적이나 사회적 차별에 민감하며, 이 경우 적극적으로 감정을 표출하는 경향이 있다.


 넷째로 베트남 사회는 공동체 중심적인 성향이 강하여, 마을이나 직장 등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않거나, 공동의 목표를 위해 협력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강한 불만과 분노를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중요한 행사나 모임에서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책임을 방기 하는 것은 개인뿐 아니라 공동체 전체를 모욕하는 행위로 간주되어 단체적인 분노를 유발하기도 한다.


 다섯째 신뢰를 매우 중요시하며, 한 번 깨진 신뢰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거짓말을 하거나 약속을 어기는 행동은 큰 화를 불러올 수 있다. 특히 개인적이든 사업적이든 신뢰를 바탕으로 맺어진 관계에서 거짓말을 한다면, 이는 상대방에게 큰 모욕감을 주며 심한 분노를 초래할 수 있으며, 믿음을 저버리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 행동으로 간주한다고 한다. 


 사실 5가지의 이유에 대한 정리 하면서 신뢰를 중요시한다는 말에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저렇게 시간 약속을 안 지키는 사람들이 신뢰를 중시한다고?' '시간 약속은 신뢰와 별개인가?'라는 의문을 가졌다. 

 

 그런데 살펴보니, 베트남에서 시간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일과 거짓말이나 신뢰 위반과는 조금 다른 개념이라고 한다. 베트남에서는 시간에 대한 개념이 다소 유연할 수 있다. 한국처럼 시간을 엄격하게 지키는 문화와 달리, 베트남에서는 약속 시간에 조금 늦는 일이 흔하고, 때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이는 베트남의 느긋한 생활 방식과도 연결되어 있는데, 특히 일상적인 만남이나 비공식적인 모임에서는 시간에 대해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약속 시간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거짓말이나 신뢰를 저버린 것이라고 여기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은 문화적으로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신뢰 위반이나 거짓말은 훨씬 심각한 문제로 간주된다. 예를 들어, 사업적 거래에서의 계약을 어기거나 중요한 약속을 의도적으로 지키지 않는 경우, 혹은 거짓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베트남에서도 큰 신뢰 위반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상적인 시간 약속의 지연은 보통 이러한 심각한 신뢰 위반으로 여겨지지 않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기다림의 미덕'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고 한다. 

 베트남에서도 중요한 약속이나 공식적인 일정은 보다 철저히 지켜진다. 특히 비즈니스 미팅이나 공적인 약속에서는 시간을 엄격히 준수하는 것이 기대된다. 중요한 자리에서 시간 약속을 어기는 것은 신뢰 위반으로 간주될 수 있고, 비즈니스 관계에서는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반면, 친구나 가족과의 비공식적인 만남에서는 시간이 유연하게 처리되는 경우가 많아, 이런 상황에서는 약속에 늦더라도 그것이 거짓말이나 신뢰를 저버리는 것으로 해석되지 않는다. 


 공개적인 무시나 가족에 대한 모욕, 부당한 대우나 차별에 대해 화를 내고 공격적으로 변하는 것에야 동의하지만,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을 '기다림의 미덕'으로 인정하기엔 내가 너무 한국적인 듯하다. 기다림의 미학을 알지 못하고 난 공개적으로 무시를 당했다고 생각하고 역정을 내었으니 어찌 보면 그들은 나의 행동과 눈빛에서 똑같이 살기를 느끼지 않았을까?




작가의 이전글 "강물은 멀리 흘러도 그 뿌리는 산에서 나온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