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의 희생에 공감하는 자세가 필요한 때
아버님과 아버님 세대분들께 들려 드리려고 몇 번의 영상을 만들어 올렸는데, 사실 너무 많이 놀랐다. 내가 영상으로 올리고 있던 베트남 관련 영상들은 한 두 주가 지나야 조회수 백 건 정도를 넘기는 게 대부분인데 월남전, 625 관련 영상들은 그 반응이 뜨겁다. 어제 올린 영상도 하루 만에 조회수 1,300건이 되었다. 그만큼 추억을 회상하고픈 어르신들이 많으신 것이리라.
아버님은 조종사로 월남전에 참전하셨고, 소위 베트콩도 직접 보지 못하셨다고 한다. 사진들도 호수와 바나나 나무가 있는 곳에서 쉬면서 포즈를 취한 것이나 군복으로 멋진 포즈를 취하시는 것들이 대부분이어서 나의 월남전에 대한 인상은 그저 이국적이라는 것이 전부였던 것 같다. 물론 아버님의 동료분이 전사하셨다는 말씀도 듣긴 했지만 실감 나는 것은 아이였다.
그런데 전쟁 후 트라우마에 대한 기사를 보고 한국군이 월남전 참전 이후 갖는 트라우마에 대해 살펴보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상상할 수 없었던 하지만 글을 보는 순간 머리가 절로 끄덕여지는 내용들이었다. '월남전 참전 이후 한국 참전 용사들의 트라우마'에 대해 살펴본 내용들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트라우마의 종류는 5가지 정도로 압축할 수 있겠다.
1. 전장에서의 전우 상실과 그로 인한 트라우마 한국 월남전 참전 용사들에게 가장 심각한 트라우마 중 하나는 전우의 죽음을 목격한 경험이다. 전쟁 중 동료가 눈앞에서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은 충격은 귀국 후에도 지속적인 악몽과 생존자 죄책감(Survivor’s Guilt)을 유발했다. 전우와의 생사를 함께한 유대가 깊었던 만큼, 살아남은 용사들은 자신만이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평생 고통받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한 참전 용사는 전투 도중 가까운 전우가 지뢰를 밟아 즉사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이후로 매일같이 그 순간이 떠올라 일상생활에서 강박적인 회상과 불안을 겪으셨다고 한다. 그 분은 오랫동안 이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해, 사회생활에도 큰 어려움을 겪게 되셨다고 한다.
2. 귀국 후 사회적 소외감과 적응 문제 월남전 참전 용사들은 귀국 후 사회에서 겪은 소외감이 큰 트라우마로 남았다. 당시 한국은 경제 성장을 위해 전쟁에 참전했지만, 전쟁 후 용사들에 대한 사회적 지원 부족과 무관심이 심각했다. 베트남 전쟁의 결과가 정치적 문제로 귀결되면서 참전 용사들은 영웅으로 대우받지 못하고, 오히려 무관심이나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로 인해 많은 참전 용사들은 자신이 사회에서 고립되고 이해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한 용사분은 전쟁 후 귀국했지만,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멀어져 고립된 생활을 선택하셨다. 전쟁에서 느꼈던 심리적 고통을 이해받지 못해 점점 대인관계를 끊고, 오랜 기간 우울증에 시달리며 지내셔야 했다고 한다.
3. 전투 중 경험한 지속적인 경계 상태 (과도한 경계심) 전장에서 끊임없는 위협에 직면해 있던 용사들은 전후에도 지속적인 경계 상태(Hypervigilance)를 겪었다. 이는 일상생활에서도 소리나 움직임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형태로 나타나며, 전투 중 느꼈던 공포가 일상에서도 계속 반복되는 것이다.
전후에 큰 소리나 폭죽 소리에 강한 공포감을 느끼며 순간적으로 전장에서와 같은 반응을 보이기도 하신다. 특히 비 오는 날 특히 불안해했는데, 이는 전쟁 중 비 내리는 전투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불안이 극대화되어 일상생활에서도 긴장을 놓을 수 없으셨다고 한다.
4. 사회로의 복귀와 직업적 어려움 월남전 참전 용사들 중 많은 이들이 전쟁 후 정상적인 직업으로 복귀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셨다. 전투 중의 경험은 그들의 정신적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고, 사회에서 정상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데 심리적 장벽을 만들었다. 많은 용사들이 트라우마로 인해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직업을 잃거나 유지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으셨다.
한 분은 전쟁 후 일상적인 회사 업무에서 집중력 부족과 잦은 분노 발작을 겪으며, 직장에서 자주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셨는데 결국 여러 차례 직장을 잃었고, 정신적 문제로 인해 경제적으로도 큰 타격을 입게 되셨다고 한다.
5. 가족과의 관계 악화 트라우마를 겪은 참전 용사들은 가족 관계에서도 큰 어려움을 겪으셨다. 전장에서의 경험은 그들의 심리 상태에 큰 변화를 일으켰고, 감정적으로 둔해지거나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는 경우도 많았다. 이러한 변화는 가족들과의 관계를 악화시키고, 가정 내 문제로 이어지기도 했다.
한 참전 용사는 귀국 후 가족들과의 의사소통이 단절되고, 종종 감정적 분노를 폭발시켰다. 그분은 전쟁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해 가족을 돌보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가족들과 멀어지는 결과를 맞게 되었다.
한국의 월남전 참전 용사들은 전장에서의 충격적인 경험과 전후 사회에서의 지원 부족, 고립감, 트라우마로 인해 심리적 고통을 겪으셨던 것이다. 전우를 잃은 슬픔, 사회와의 단절, 그리고 전투 중의 경험으로 인한 지속적인 불안은 그들의 삶을 뒤흔들었으며, 사회 복귀에도 큰 어려움을 초래하기도 했다.
아무런 말씀 없이 월남으로 주재원 파견을 간다고 했을 때 그저 웃음을 보여 주셨던 아버님도 마음 한편에는 어떤 트라우마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북한 병사들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장에 투입된다는 기사를 보았다. 내 나라에서는 물론이고, 내 조국의 전장도 아닌 곳에서 치러야 하는 전쟁....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 아버님과 월남전 참전 어르신들께 다시 한번 감사하는 마음과 마음속에 감추고 계신 트라우마에 공감하는 마음을 가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