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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호 Nov 25. 2024

친일/친프 세력 척결

한국과 베트남의 유사점과 현재의 문제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처럼, 외세 지배를 경험한 나라들은 대개 그 협력 세력에 대한 척결 과정을 거친다. 한국과 베트남은 각각 일본과 프랑스로부터의 식민 지배를 겪으며 민족적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협력 세력에 대한 청산 작업을 시도했습. 하지만 이 두 나라는 유사한 과정 속에서도 완전히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사회적 갈등과 정치적 논란의 근원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과 베트남의 친일 및 친프 세력 척결은 역사적 상황에서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특히, 외세와 협력한 지배 세력에 대한 민족적 반감과 사회적 정의 구현이라는 목표 아래 진행된 점에서 공통점이 많다.


 한국에서의 친일 세력은 주로 일제 통치하에서 고위 관료나 경찰, 군인으로 활동하며 일본의 식민 정책을 옹호하거나 민중을 억압했던 인물들로 구성되었고, 베트남의 친프 세력은 프랑스 식민지 행정에 협력한 지방 관료, 지주, 군사 지도자들로, 프랑스의 경제적 착취와 민중 억압에 동조했었다. 

 이러한 세력을 척결하려는 데에는 단순히 과거의 잘못을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적 정체성을 회복하고 사회 정의를 실현하려는 목표를 가진 것었다. 또한 베트남의 경우 농지 개혁을 통해 프랑스와 협력했던 대지주 계층의 재산을 몰수하고, 이를 민중에게 재분배함으로써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려 했다. 한국에서도 일부 재산 환수를 시도했으나 성공적이지 못했다.


 하지만 이 척결 과정에서 몇 가지의 문제점이 발생한다. 우선 감정적이고 급진적인 방식이 그것으로, 베트남의 농지 개혁 과정에서 많은 지주와 관료들이 공정한 재판 없이 처형되거나 투옥되기도 하였다. 한국에서도 일부 친일파 처벌이 민중 감정에 치우쳐 재판 절차가 미흡했다는 비판이 있다. 또한 한국은 미군정이 친일 세력을 필요로 하여 척결을 제한했고, 베트남 남부에서는 미국과 프랑스의 개입으로 친프 세력의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그 한계를 드러냈다. 


 두 나라 모두 외세 협력 세력에 대한 척결을 시도했으나, 완전한 청산에는 이르지 못 한 결과를 나았고, 이는 현재의 문제로도 이어지고 있다.


 한반도에서는 해방 후, 친일파 청산을 위한 노력이 있었으나, 남한 지역에서는 미군정과 한국 전쟁의 발발로 인해 대부분의 친일 세력이 처벌을 피했다. 오히려 친일파 중 일부는 해방 후 새로운 정권에서 요직을 차지하며 계속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러한 미완성의 청산은 오늘날까지 정치적 논란과 역사적 갈등을 야기하고 있으며, 특히, 일본과의 외교 관계 논의나 역사 교과서 문제에서 이 논란이 반복적으로 등장하곤 한다. 

 북베트남은 농지 개혁을 통해 친프 세력을 척결했지만, 이 과정에서 많은 민중이 억울한 희생을 당했다. 이는 체제에 대한 불만을 증폭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한편 남베트남에서는 친프 세력이 척결되지 않고 정치·경제적 권력을 유지했으며, 이는 북베트남과의 통일 과정에서 갈등을 심화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역사적 청산 작업의 미완성은 두 나라에서 현재까지도 다음과 같은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한국에서 친일파 청산 문제는 한국 정치권에서 반복적으로 활용되며, 진영 간 갈등을 부추긴다. 친일 세력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과거로 인해 한국의 민족 정체성 논란이 계속되고 있으며, 친일파 문제를 다루는 역사 교과서의 내용이 정치적 쟁점화되면서 세대 간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기도 하다. 


 베트남에서는 프랑스 협력 세력을 강력히 척결했던 북부와, 그렇지 못했던 남부 간의 갈등은 오늘날에도 지역적 불평등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급진적 농지 개혁 과정에서 발생한 억울한 희생은 현재까지도 일부 농촌 지역의 사회적 불만 요소로 남아 있다. 또한 베트남은 국가 주도로 역사를 통제하며 프랑스 협력 세력에 대한 평가를 통일했지만, 이에 대한 재논의가 부족해 갈등의 소지가 남아 있다.



 한국과 베트남의 사례는 식민지 협력 세력 척결의 어려움과 그 후유증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역사적 교훈과 과제가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1. 과거 협력 세력에 대한 명확한 역사적 평가와 청산은 민족 정체성 확립과 사회 정의 구현의 출발점이 된다. 이를 감정적 방식이 아니라 공정하고 체계적으로 수행해야 미래의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이다. 

 2. 역사를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는 것을 지양하고, 국민 간의 합의를 바탕으로 한 역사 서술과 교육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세대 간, 지역 간 소통을 통해 역사 문제를 사회 통합의 계기로 삼는 노력이 필요하다. 

 3. 과거 식민 지배에 대한 국제적 인식을 제고하고, 청산 과정을 투명하게 공유함으로써 역사적 정의를 실현하는 국제적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한국과 베트남은 외세 협력 세력 척결이라는 유사한 과정을 겪었지만, 미완의 청산은 두 나라 모두에게 사회적 갈등의 씨앗으로 남았다. 과거를 올바르게 기억하고 이를 바탕으로 화합과 통합을 이루는 것이 두 나라가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이러한 노력은 단순히 과거를 정리하는 것을 넘어, 미래를 위한 사회적 기반을 다지는 초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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