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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호 May 29. 2024

베트남 출장이발의 경험

감사와 배려로 이겨낸 코로나

 코로나 사태로 한 달 하고도 보름 정도를 이동하지 못하고 매장과 50m 앞에 임시 숙소로 마련한 호텔만을 왔다 갔다 하면서 지냈다. 아파트에서 나올 때 여벌을 많이 가지고 나왔기 때문에 더 이동을 시도할 필요도 느끼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던 중 갑자기 아파트에 키우고 있는 화분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당시 2주가 조금 넘은 상태였는데 2주를 넘게 화분에 물도 주지 못했고 뜨거운 공기가 집안에 가득 차 있어서 말라죽지는 않았는지 걱정이 되었다. 아파트에 같이 거주하시는 분과 통화를 하는 기회가 있어 그 말씀을 드리니 아파트 키를 매니저가 퇴근할 때 전달해 주면 집에 들어가 화분들 물을 주고 오시겠다고 하신다. 너무 감사한 마음으로 키를 전달해 드렸고 그날 밤 우리 화분들의 사진을 보내와 주셨다.

착하게도   굳세고   예쁘게   자라고   있는   우리   화분들

 화분의 식물들이 어려움 속에서 꿋꿋하고 예쁘게 자라 준 것도 고마웠지만, 무엇보다 키를 달라 하고 집안에 들어가 물을 주시겠다고 하신 사장님의 마음이 너무 예쁘고 감사했다. 며칠 전부터 머리가 귀까지 덮어지기 시작하여, 머리를 하루에 세 번을 감아도 머리에 뭔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기분이고 뒷목을 모두 덮고 앞 머리도 이마를 덮기 시작해서 매우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2주에 한 번씩 깎던 머리를 2달 정도까지 않고 있으니 짜증이 나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

 처음 뵙는 듯한 한 고객이 매장에 들어와 상품을 고르고 계산을 하려고 하시는데 머리를 보니 깔끔하게 깎고 정리가 된 상태였다. 무심결에 “대단하시네요. 머리를 깎으셨네요”라고 말을 건넸는데 그분이 “법인 차량의 기사가 이발 기술을 배우고 있는데 요즘 회사 직원들 머리를 다 깎아 주고 있습니다”라고 하시며 “사장님도 머리 깎으시겠어요?”라고 묻는 것이었다. “저도 깎고 싶지만 차량도 없이 이동할 수도 없고 지금은 이발소가 문을 연 곳도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랬더니 그 고객은 내일 편한 시간 알려 주시면 기사 보내서 회사로 모시고 와서 이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부담스럽기도 하고 인사치레로 하시는 말씀이려니 했는데 나가시면서 명함을 건네며, 가능하면 와서 이발하셔도 된다는 것이었다. 고객은 돌아가시고 매장에 혼자 남아 있는데 생각할수록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나라면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렇게 호의를 베풀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감사한 마음과 착한 사람을 만났다는 행복감이 느껴졌다. 그렇게 앉아 있는데 그 고객에게서 메시지가 날아왔다. 내일 점심 후 기사가 매장으로 올 것이고, 나의 숙소에 가서 깎아 드릴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기사에게 5만 동만 주시면 그 친구는 이발 연습도 하고 돈도 받는 것이라 감사해할 것이라는 메시지도 남겼다. 감사히 호의를 받기로 하고 하루를 기다렸다.

 다음 날 아침 머리를 깎는다는 기쁨에 머리를 감고 매장으로 나왔다. 정말 1시쯤 되자, 손에 보따리를 들고 한 사람이 매장 안으로 들어오는데 ‘아 저 친구가 이발을 해준다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 머리를 만지자 바로 웃으며 머리를 끄덕 거린다. 둘은 숙소로 와서 의자를 하나 들고 발코니로 나갔다. 가지고 온 보따리를 펼치더니 내 목에 두르고 뒤에서 공구를 열더니 가위를 꺼내 내 머리카락을 자르기 시작했다. “많이 많이 깎아 달라”고만 부탁하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눈을 감고 시원하게 깎인 내 머리를 상상하며 기쁘게 기다렸다. 발 밑으로 떨어지는 기다란 머리카락들을 힐끔 쳐다보곤 머리 주변에서 나를 신경 쓰게 만드는 것들을 털어내는 듯한 짜릿함을 느끼기도 했다. 거울도 없었기에 그 친구도 내게 괜찮냐고 물어보지도 않고 그저 “OK”라고 짧게 말하곤 다시 보따리를 주섬주섬 챙기기 시작했다. 감사한 마음으로 10만 동을 손에 건네주니 고맙다며 크게 웃으며 방문을 나섰다. 곧바로 화장실로 들어가 거울을 보았다. 군인처럼 짧게 깎인 모습, 하얀 새치들이 고스란히 드러나 버렸지만 속 시원한 내 모습에 또 한 번 웃음이 나왔다.

관심과 버려로 이발한 필자

 신경 써 주신 고객님께 감사의 메시지를 보내고 샤워를 한 후 옷을 다시 챙겨 입고 매장으로 나갔다. 매장을 지키고 있던 매니저가 나를 보더니 ‘하하’ 하면서 크게 웃는다. 웃긴 모습이라고 웃는 것이겠지만, 난 그저 행복하고 좋았다. 이렇게 배려해 주는 사람을 만날 수 있게 된 것도 행복하고 정말 태어나 처음으로 ‘출장 이발’이란 것을 그것도 베트남 식으로 경험을 해 본 것 자체가 행복이었다. 감사한 만남과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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