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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호 May 30. 2024

베트남 커미션의 세계

정당한 부정부패, 모두가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국제투명성기구(TI)의 2015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 집계 결과, 베트남은 4년 연속 100점 만점에 31점을 기록하며 168개국 가운데 112위에 머물렀는데 이 점수는 아시아·태평양지역 평균 43점에도 크게 못 미치는 것이다. 이러한 부정부패에 대해 정부에서도 개혁의 칼날을 세우고는 있지만 몸에 배어 있는 커미션 문화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을 듯하다. 2017년 11월. 다낭시의 인민위원장은 토지 및 도시관리에 대한 위반과 발생한 문제점에 대한 책임자로서 경고조치를 당하였으며, 건설회사 대표로 베트남 최초로 자가용 비행기를 구입하여 화제가 되었던 Hoang An Gia Lai社의 회장도 부정비리의 오명을 받아 사세가 급속히 몰락한 상태이다. 작년 말부터 시작된 부정부패로 인한 공산당 고위 당직자들의 사퇴로 지금까지 베트남은 정치적 혼돈의 시간을 갖고 있다. 


 부정부패의 모습은 베트남 사람들의 일상에서도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의 하나이다. 대학생이 대학을 졸업하고 교수로부터 회사에 추천을 받아 취직을 하게 되는 경우 첫 월급은 고스란히 교수님의 몫이다. 혹은 친구가 회사 입사를 소개해 주어 입사를 하게 되는 경우에도 첫 달 월급분을 그 친구에게 준다는 말도 들었다. 베트남 사람들끼리 하는 일이니 확인할 수는 없다. 아파트를 임차하는 경우에도 집주인은 임차 1개월치를 중개인에게 지불하여야 한다.

 2004년 첫 해 베트남 주재원으로 나와 회사 직원의 소개로 아파트 임차계약을 진행하였는데 그 직원은 한 해가 지나기 전에 이직을 하였다. 그런데 한 해 임차 계약이 끝날 즈음 부동산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임차계약을 연장하여야 하는데 이직한 그 직원이 찾아와 새로 일 연초에 대한 커미션을 자기에게 달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어이없고 황당한 일이라 절대 중개 수수료를 그녀에게 줄 필요가 없다고 하고 말았지만 '베트남이란 곳이 이렇구나'라고 확실히 우리나라와 차이 나는 것을 발견한 한 사례가 되었다.


 한국에서도 관광 가이드 등이 식당이나 호텔로부터 커미션을 받고 있는 것으로는 알고 있지만, 베트남은 지금도 그것이 아예 공식적이어서 커미션 계약서를 작성한다고도 한다. 개인은 10% 법인은 16~18% 정도의 커미션은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백화점 부지개발을 담당했던 나로서는 이런 커미션에 대한 황당하고도 믿기지 않는 일들을 다른 누구보다 더 많이 경험한 것 같다. 백화점을 만들려는 부지이다 보니 호치민시, 하노이에서도 가장 노른자 땅을 선택해야만 했고 그런 땅은 이미 해외 유수 기업들도 개발을 위해 눈독을 들이고 있는 그런 프로젝트들이었다. 하루는 허름하게 옷을 입은 사람 둘이 사무소에 들어와 자기가 어느 부지를 개발할 수 있도록 호치민시의 인민위원장과 만나게 해 주겠다며 자기들과 함께 사업을 추진하면 프로젝트 개발 확실히 할 수 있다며 내놓은 자료가 인민위원장과 함께 찍은 사진 몇 장이었다. 부지에 관련된 토지 지적도나 개발 계획 등을 보여달라고 하자 500만 불 선수금을 자기 회사의 Escrow account에 넣으면 모든 자료를 공개하겠다고 하고 만약 그렇게 한 상태에서 개발이 실패하면 자기네가 500만 불을 보상금으로 더 우리에게 지급하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양측이 같이 500만 불을 escrow account에 넣는 것도 아니고 우리만 넣고 시작하는 것이다. 처음엔 내게만 온 사기꾼인가 싶었는데 몇 해 그 일을 하다 보니 그런 사람도 몇 번 보게 되었고, 다른 회사 직원들로부터도 그런 황당한 경험담을 듣곤 했다.

 호치민시 2군의 부지개발을 진행하는데 처음 우리 쪽에 의뢰가 들어온 프로젝트가 부지 규모가 커서 롯데 건설과 롯데자산으로 이관된 프로젝트가 있었다. 즉 그룹에서 복합상가를 짓고 우리는 백화점을 임차하여 운영하는 식으로 프로젝트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건설의 법인장에게 프로젝트 진행사항을 묻던 중 황당한 얘기를 또 한 번 들었다. 중개인이 그 프로젝트에 아파트를 지으면 한 층을 자기에게 달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아파트 한 채가 아니고 한 층 전체를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대담한 것인지 아니면 무모한 것인지… 그렇게 그 프로젝트의 진행은 중단되었다. 


 그렇다고 부패한 베트남 사람으로만 쳐다보면 함께 살아가기 어렵지 않을까? 여기도 조금씩 자정작용을 통해 청렴해질 것이고 그렇게 되는 것을 알고 이해하고 쳐다보고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싶다. 베트남에서 근무할 당시 법인장님이 내게 "이곳은 무엇을 해도 최소 3% 커미션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너는 왜 내가 술이라도 한 잔 안 사주나?'라고 우스개 소리로 말씀하신 적이 있다. "저도 알기는 하는데 외국인한테는 안 통하나 봅니다. 제게는 직접 안 주네요. 달라 할 수도 없고요."라고 답변하고 같이 웃어넘긴 적이 있다.


  '10년이 더 지난 일이니 이제는 내부적으로 조금은 나아지지 않았을까?' 기대반 의구심반으로 지켜보고 있지만, 작은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지금도 커미션의 문화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듯해 베트남 현지인을 보는 눈이 그리 곱지만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지금도 내 사업에서 숭숭 빠져나가는 것이 있다는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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