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역사와 현재
설 연휴(Tet, Ept) 기간중에 귀향을 하거나, 집안에 무슨 일이 있어 며칠간 휴무를 하겠다는 직원들에 고향을 물어보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하노이 주변 북부지역이라는 말을 듣고 의아해 한 적이 있다. 실제 우리 매장 주방장의 고향도 하노이이다. 매일 아침 운동을 나오시는 아주머니들 중에도 절반에 가까운 분들의 고향이 북부와 중부라는 말을 들었다. 호찌민시라고 하면야 돈 벌러 대도시로 왔다고 할텐데 이곳 지방에 까지 이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일자리를 구하고 있는가가 궁금했었는데 살펴보니 이는 통일 이후 진행된 "신경제구역 정책"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1975년 4월 30일,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남베트남이 북베트남에 의해 점령되면서, 베트남은 사회주의 체제 하에 통일되었다. 통일 이후, 베트남 정부는 국가 재건과 체제 안정을 위해 대대적인 사회 재편을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북부 지역 주민들을 남부 지역으로 이주시킨 "신경제구역(New Economic Zones)" 정책이다.
1. 신경제구역 정책과 이주의 역사적 배경
전쟁의 여파로 남부 도시, 특히 사이공(현재의 호찌민시)은 피난민들로 과밀해 있었고, 경제 기반은 크게 붕괴되어 있었다. 정부는 도시 인구를 분산하고 미개발 지역을 개척하기 위해 수십만 명의 북부 주민들을 남부로 이주시켰다. 이들은 주로 동나이(Dong Nai), 람동(Lam Dong), 빈프억(Binh Phuoc), 떠이닌(Tay Ninh), 까마우(Ca Mau) 등 남부 및 중앙고원 일대에 배치되었다. 이 중 상당수는 자발적인 이주가 아닌, 정부 주도의 강제적인 재배치였다.
유엔개발계획(UNDP)과 일부 국제 연구 자료에 따르면, 초기 5년간(1975~1980) 약 100만 명 이상이 이주하였고, 이후에도 지속적인 이주가 이어지며 총 200만 명 이상이 신경제구역에 정착하려 시도한 것으로 보고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정책은 단순한 경제 개척을 넘어서, 체제 충성도가 높은 북부 주민들을 남부에 정착시킴으로써 통일 후 사회주의 질서를 강화하고 남부 주민들에 대한 정치적 통제를 가능하게 하는 목적도 담고 있었다.
북부 주민들의 남하에는 정치적, 경제적, 전략적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정치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북부는 오랜 기간 사회주의 이념에 따라 통치된 지역이었고, 공산당에 대한 충성도가 높았다. 반면 남부는 과거 자본주의 체제와 미국 문화의 영향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북부 출신 당 간부 및 인민군 출신 인물들을 남부에 배치함으로써 남부 지역의 정치적 안정과 체제 유지를 꾀하고자 했다.
경제적으로는, 북부는 토지와 자원이 부족했고, 남부는 전쟁으로 파괴되기는 하였지만 상대적으로 토지가 넓고 비옥했다. 북부 주민들에게는 새로운 정착지를 제공하고, 국가 주도의 농업 생산 기반을 확대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사회 통합 및 인구 분산 측면에서도 이 정책은 필요했다. 즉, 대도시의 과밀화를 해소하고, 지역 간 인구 불균형을 조정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던 것이다. 특히 산업화가 덜 이루어진 지역의 노동력을 보충하고, 새로운 생산 거점을 구축하려는 전략이 포함되어 있었다.
북부 이주자들은 대체로 충성도가 높은 계층으로 선발되었으며, 출신은 농민이나 전쟁 참전 군인의 가족, 당 간부의 친인척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들에게는 일정 규모의 토지, 세금 감면, 정착 초기 생필품 지급, 자녀 교육 우대 등의 혜택이 제공되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지원이 부족하거나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생존을 위해 스스로 자립해야 했고, 일부는 도시 빈민가로 되돌아가기도 했다.
특히, 북부 주민들이 남부로 대거 내려온 것과 동시에, 많은 남부 도시 주민들, 특히 호찌민시에 살던 사람들은 강제로 고향으로 되돌아가거나, 정부가 지정한 농촌 및 산간 지역으로 쫓겨나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이러한 방식으로 기존 도시에서 축출된 남부 주민은 약 75만 명에서 1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중 일부는 새로운 정착지에서도 안정적인 삶을 이어가지 못하고, 탈출을 시도하거나 해외 망명을 결심하게 되었다. 바로 이 시기에 등장한 것이 "보트피플(Boat People)"이라 불리는 베트남 난민들이었다. 수십만 명이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너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을 거쳐 미국, 프랑스, 캐나다 등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2. 지역 간 문화 갈등과 그 여파
이러한 대규모의 인구 이동은 단순한 정착을 넘어 문화적 마찰과 정체성 갈등을 초래했다. 북부와 남부는 언어 억양, 식문화, 사고방식, 정치 의식 등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이주 이후 공동체 내 갈등이 발생하기도 했다.
남부 주민들 입장에서는 외부에서 유입된 북부 출신들이 정치적 요직과 공공기관에 빠르게 진입하는 것에 대한 불신과 소외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반면, 북부 이주자들은 남부 주민들을 체제 순응도가 낮고,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다고 평가하며 거리감을 두는 경향도 있었다.
이러한 인식은 지금까지도 일부 지역 사회에 잠재된 갈등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오늘날 호찌민시 등지에서 북부 출신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으며, 이들은 경제활동뿐만 아니라 정치적 영향력 면에서도 적지 않은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베트남 통일 이후의 이주 정책은 단순한 인구 분산 정책이 아니었다. 그것은 체제 이식, 권력 재편, 사회 통제의 전략이었으며, 그 여파는 여전히 현재의 도시 구조와 문화적 분위기 속에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이 정책이 성공을 거둔 것인지, 실패인지는 모르겠지만 북부, 중부, 남부 지역 사람들이 이곳 지방에도 섞여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흥미롭기도 한 이유는 '우리도 그런 일이 생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이에 대한 준비도 해야하지 않을까?' 라는 걱정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