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다시 향수를 뿌리기 시작했다.

노인네 냄새 안 난다는 말 듣고 싶어서.

by 한정호

오늘 아침, 향수를 뿌렸다.

젊어 보이려고도 아니고, 멋 좀 부리려는 것도 아니다.

그냥... ‘늙은이 냄새’ 안 난다는 말 듣고 싶어서.


어제 저녁, 호치민에서 지내는 사장님을 오랜만에 뵈었다. 식사도 같이 하고 반주도 한 잔 나누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문득 이런 질문이 나왔다.


“한 사장, 향수 뿌리냐?”

뜬금없는 질문에 당황스러워 웃기만 했더니, 사장님이 말을 이어가신다.

“전에 손주들 얘기한 거 기억나지? 할아버지 댁에 가면 ‘할아버지 냄새 난다’고 안기는 걸 꺼려했던 거. 왜 그런 줄 아냐? 이유가 세 가지야. 자주 안 씻어서, 옷 자주 안 갈아 입어서, 밖에서 논밭일 하고 땀 냄새 배서. 거기다 담배 냄새까지 섞이면 그게 바로 '할아버지 냄새'야.”


가만 듣고 있으니 웃기기도 하고, 찔리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나도 오늘 방금 오토바이 타고 오면서매연 잔뜩 뒤집어썼고, 방금 밖에서 담배도 한 대 피고 들어왔던 것이다. 그걸 보고 사장님이 ‘너도 할아버지야’라고 돌려 말하신 거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샤워는 자주 한다. 하루에 세 번, 하지만 걱정은 따로 있다.

숙소에 들어오면 고양이 보스의 소대변 냄새가 코를 찌른다. 그 냄새가 내 옷이나 몸에 배여 있을 것이 자명하다. 밤이면 보스가 내 머리맡에 올라와 베개를 같이 베고 자니...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지만... 어쩌면 나도 그 냄새를 몸에 달고 다니는 건 아닐까 싶다.


샤워를 해도 그때뿐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오늘 아침, 향수를 꺼내 다시 뿌렸다. 이젠 나도 '노인네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서' 향수를 뿌리게 된 것이다. 조금은 슬프지만, 현실이다.

하지만 어쩌면 이 늦은 깨달음이 그렇게 나쁘진 않다. 나이 드는 걸 막을 순 없지만, 관리하지 않는 것과는 다른 얘기니까. 그리고 이 깨달음을 주신 사장님께 감사하다.


명함.png


keyword
작가의 이전글그랩(Grap) 오토바이, 그 편함 뒤에 숨은 위험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