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잘못없이 사고나는 것이 베트남 교통사고.
어제 저녁, 오랜만에 호치민에 계시는 지인 사장님을 찾아뵈었다. 저녁도 같이 먹고 반주도 한 잔 나누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전에 한 번, 호치민 시내 진입로가 막혀 약속시간에 늦은 적이 있어서 이번에는 아예 1시간이나 먼저 출발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예상보다 훨씬 덜 막혀서 약속보다 2시간이나 일찍 도착해 버렸다.
나는 전에 몇 번 약속에 늦을까 봐 그랩 택시 대신 오토바이를 탄 적이 있다. 차량보다 훨씬 빠르고 골목도 쉽게 빠져나가니까 시간 맞추기엔 확실히 효율적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자연스럽게 오토바이를 불러 푸미흥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사장님이 나를 보자마자 정색하시며 하시는 말.
“한 사장, 절대 다시는 그랩 오토바이 타지 마. 사고 나면 다치거나 죽어도 그냥 개죽음이야. 보상? 고작 1억동이야. 600만 원. 한국에선 진짜 장례비도 안 나와.”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나도 현지 생활 오래 했고, 그랩 오토바이 수백 번은 탔겠지만 그렇게 구체적으로 ‘보상금 1억동’이라는 말을 듣고 나니까 현실감이 확 오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외국인 입장에선 정말 아무 보장도 없고, 사고 나면 ‘내 잘못’으로 끝나버리는 구조다.
물론 오토바이 기사 대부분은 성실하고 조심스럽게 운전한다. 하지만 베트남 도로 사정이 어떤가. 교차로마다 오토바이가 얽히고설키고, 무단횡단에 깜빡이 없이 끼어드는 차량들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위협적인 순간이 펼쳐진.
주변에서 수많은 지인들이 오토바이 사고를 당하는 모습을 보았다. 멀리 찾아볼 것도 아니다. 우리 매장의 매니저는 지난 해 귀가하다 오토바이가 튕겨나가 큰 수술을 하고 세 달여를 병원과 집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1년이 지난 이번 달 초에 철심 등을 교체하는 2차 수술을 하여 아직까지 집에서 요양중이다.
잠깐의 편리함에 익숙해져 ‘그랩 오토바이’가 일상이 되면, 정말 한순간에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사실 나도 처은 베트남에 입국한 지 1년쯤 되어 '이제 베트남 알만하다'고 설래발을 칠 때즈음 하느님이 어찌 아셨는 지, 오토바이를 탔다가 사고를 당하여 눈가를 위 아래로 수십바늘 꼬매는 큰 사고를 치른 적이 있다.
퇴근 하는 직원들에 항상 "Lái xe chậm thôi, an toàn là trên hết. - 천천히 운전하세요. 안전이 최고입니다." 라고 말은 하면서도 정작 내가 내 안전은 잊고 있었던 것이다.
갑자기 예전에 그랩 오토바이를 타고 시내 1군에서 푸미흥으로 가면서 두 손을 들고 핸드폰으로 영상을 찍는다고 설쳐대던 기억이 떠올랐다. 생각해 보니 아찔하다. 퇴근시간 막히는 길이라고 오토바이를 타 놓고는 그런 행동을 하면서 좋아 했으니...
이제부터 그랩 오토바이 안 타기로 내 마음속에 딱 다짐했다.
베트남에서 교통사고 소식은 수도 없이 들었지만, 어느 누구한테서도 자기 잘못으로 그 사고가 일어났다고 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사실 그럴 수도 있다. 저녁에 술 마신 사람들이 귀가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오토바이 운전을 해야 하는 현실, 나는 정상적으로 운전을 해도 사거리, 골목에선 언제 무엇이 튀어 나올지 모른다. 그래서 오토바이건, 자동차이건 사거리에 다가가면 크락션을 빵빵 누른다. 일종의 신호다.
'베트남 사람들은 쓸데없이 아무 때나, 저렇게 시끄럽게 크락션을 누르는 거야'라며 짜증을 내기도 했었지만 이제는 이해할 만 하다.
베트남의 상징. 오토바이. 그러나 이제 나와는 영원히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