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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남부, 건기의 끝자락에서

'참는 법'보다는 '조화롭게 살아가는 법'을 안다.

by 한정호

3월 말, 아침 햇살이 부쩍 눈부셔졌다는 걸 느낀다. 선선하게 불던 바람에도 미세하게 ‘마른 기운’이 감돈다. 베트남 남부, 이제 건기의 끝자락에 와있다.

비는 점점 뜸해지고, 구름보다는 태양이 하늘을 차지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한 해의 절반을 비와 함께 살아온 남부 사람들은 이제 또 다른 절반을 준비한다. 햇살과, 바람과, 뜨거운 거리의 계절을. 그늘에서 마저 반사된 햇살에 눈이 찡그려 진다.

KakaoTalk_20250329_142449592.jpg 따가운 햇살에 바닥마저 뜨거워 보인다

햇살을 품은 삶

베트남 남부의 건기는 뜨겁고, 건조하고, 때론 숨이 막힐 정도지만,

그 안에는 나름의 리듬과 질서가 있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참는 법'보다는 '조화롭게 살아가는 법'을 안다.

햇살을 피해 숨기보단, 그 햇살 속에서 하루를 설계하고 작은 쉼표를 곳곳에 마련해 두는 것.

그것이 이곳에서 건기를 살아내는 방식이다.

더위를 대하는 방식,

그들의 지혜 남부 사람들은 더위를 '피하려 하지 않는다'. 그 대신 몸과 마음을 그 계절에 맞춘다.

KakaoTalk_20250329_142449592_01.jpg 모두가 사라진 텅빈 커피숍 외부 전경

점심 이후, 거리에는 적막이 감돈다.

해먹에 누워 낮잠을 청하는 집집마다 창문엔 살랑거리는 커튼과 선풍기 바람이 스친다.

짧은 낮잠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더운 낮을 건너가는 삶의 방식이다.

KakaoTalk_20250329_142449592_03.jpg 창문은 모두 가려지고, 의자에 누워 쉬고 있는 직원 모습

햇살이 강해지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 사이,

사람들은 실내로 들어간다. 야외 활동은 가능한 아침 일찍 혹은 해가 질 무렵으로 옮겨간다.


면소재의 밝은 옷, 양산과 손등 커버,

눈을 찌푸리지 않게 해주는 모자.

햇빛 아래에서 그들은 오히려 ‘가려서 시원한 법’을 알고 있다.


건기가 시작되면, 집안 곳곳에도 작고 조용한 변화들이 생긴다.

에어컨 필터를 청소하고, 선풍기를 꺼내 먼지를 턴다. 정수기의 필터를 갈고, 혹시 모를 단수를 대비해 큰 물통을 준비해두는 이들도 있다.


마당의 화분들은 아침과 해 질 무렵으로 물 주는 시간이 정해진다.

햇볕 덕분에 이불과 커튼, 두꺼운 옷들은 금세 뽀송해진다.

이 시기, 베트남 가정엔 '한 번쯤 모든 걸 깨끗이 말릴 기회'가 찾아온다.

건기란 곧 햇살을 통해 생활을 다시 정돈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이 시기, 남부를 찾는 여행자라면 몇 가지는 기억해둘 만하다.

썬크림은 필수다. 햇살은 강하고, 한낮엔 그늘조차 뜨겁다. 생수는 늘 챙기고, 땀이 많이 나는 사람이라면 미네랄 보충 음료도 나쁘지 않다.

건기에는 모기보단 먼지와 알레르기가 문제다. 오토바이 매연과 미세먼지가 섞인 공기를 마주하게 되면 평소보다 눈이 가렵거나 목이 따가울 수도 있다.


그렇기에 하루의 여유로운 일정은 아침의 맑은 공기, 그리고 저녁노을 아래의 거리 산책으로 채워보는 것을 권한다.

베트남의 하늘.jpg 해질녁 베트남 풍경

외국인인 나에 눈에는 베트남에 하루에 두 번의 밤이 찾아오는 듯 하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한산한 거리. 숨죽인 듯 조용한 밝은 밤. 나도 이 밝은 밤에 익숙해진 듯 하다. 한 숨 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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