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배워야 할 요즘 세대의 감각 3가지
예전엔 어른이 무조건 맞는 시대였다. 경험이 많고, 산전수전 다 겪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른의 말은 곧 진리였고, 젊은이들이 고개를 들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라는 말이 날아오곤 했다. 실은 아흔이 넘으신 우리 아버님께 나는 아직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다. 심지어는 베트남에 관한 이야기에서도. 혹 너무 하신다 싶어 잘못을 지적하자면 목이 메여오시면서 아비 말도 무시한다며 문을 꽝 닫고 당신 방으로 들어 가시곤 한다.
나 역시 그런 말을 들으며 자랐고, 한때는 그런 말을 내뱉은 적도 있다.
"요즘 애들은 말이야…"
"뭘 좀 알아야 말을 하지."
그 말이 얼마나 익숙하면서도 편한 말이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코로나 기간중 예방주사 접종에 대해 딸아이와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 여러 통계자료나 학설 등을 꺼내며 내게 자신은 백신을 맞지 않겠다며 한동안 글로 실랑이를 벌였다. 당시에 나는 그녀에게 당신의 생각으로 백신 맞는 것을 강요하지는 않겠지만, 주변 사람들에 백신을 맞는 것이 문제가 있는 것이니 또는 자신의 결정이 정답이라는 말을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으로 마무리 한 기억이 다.
당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내가 더 많이 알고 있는 걸까?'
요즘 젊은 세대는 우리가 겪지 못한 세계에서 살아간다. 우리가 듣기만 했던 기술, 사용해본 적도 없는 앱, 상상도 못한 소통 방식 속에서 그들은 이미 그 세계의 ‘원어민’이 되어 있었다.
코딩과 알고리즘을 일상처럼 다루고, 해외 뉴스와 트렌드를 실시간으로 읽고, AI, 블록체인, 디지털 자산, 글로벌 감각을 이미 체득하고 있으며, 소비와 윤리, 환경에 대한 태도도 훨씬 깨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알지 못했던 감정들까지 더 세밀하게 말로 풀어내는 능력이 있다. 감정을 숨기고 견디는 게 미덕이라 배웠던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다.
그런데도, 내가 단지 나이가 더 많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에게 충고하고, 단정하고, 판단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경험이 아니라 관성이었다.
이젠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를, 그들은 먼저 걷고 있다. 내가 한 발 늦게 그 세계를 배워가야 하는 입장일 수도 있다. 그래서 요즘은 말을 아끼게 된다. 내가 먼저 "잘 모르겠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그들도 내 말을 기꺼이 들어줄 수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른이라는 이유로 권위를 갖는 시대는 끝났다. 이젠 배움 앞에서 겸손한 자세를 갖는 것이 진짜 어른의 모습 아닐까 싶다.
한 세대를 살면서 가장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요즘 애들은 말이야…” 하지만 이제는 그 말을 고쳐야 할 것 같다.
“요즘 애들한테 배워야 해…”
왜냐하면 지금 세상은, 이전 세대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곳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요즘 세대의 감각은, 우리 어른 세대가 새로 배워야 할 생존 기술이자 태도다. 우리 자식들에게서 배우고 싶은 세 가지의 신세대 감각에 대해 살펴 보았다.
1.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말하는 감각
“내가 왜 이런 기분인지 설명할 수 있어요”
예전엔 감정을 숨기고, 꾹 참고, 인내하는 것이 미덕이었다. 분노, 슬픔, 우울 같은 감정은 ‘연약함’으로 여겨졌고, 심지어 “감정에 휘둘리지 마라”는 말이 무슨 좌우명처럼 따라붙었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다르다.
“저 지금 불안한 감정이 올라오고 있어요.”
“이건 저를 무시당한다고 느끼게 만드는 말이에요.”
“오늘은 감정이 좀 벅차서 쉬고 싶어요.”
감정을 언어로 꺼내고, 인정하고, 서로 공유한다. 그리고 그것이 이상하거나 유난스럽지 않다. 그건 연약함이 아니라 정서적 소통 능력이다. 어른인 나도, 말없이 참는 대신 ‘나 지금 기분이 이래’라고 자연스럽게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사실 아빠도 너희들의 행동에 솔직히 속상하기도 하고, 화를 내고 싶은 심정이야"라고. 그러고 나면 그 다음 말이 좀 더 온화해 질 것 같다. 전에 처럼 꾹 참고 있다가 한 번에 울화가 터져 이전에 감은 불만까지 폭발적으로 입에 담아 아이들이 '아빠가 왜 저러지?'라는 생각으로 황당해 하는 일은 적어질 듯 하다.
2. 다양성을 불편해하지 않는 감각
“나랑 다르다고 이상한 게 아니에요”
예전엔 모든 게 기준과 틀 안에서 돌아갔다. 남자니까 이래야 하고, 여자는 저래야 하고, 직장인은 이래야 하고, 부모는 저래야 하고…
그런데 요즘 세대는 말한다.
“꼭 결혼해야 하나요?”
“왜 취미를 직업보다 가볍게 여겨요?”
“남자가 핑크 좋아하면 안 돼요?”
그들에게 다름은 불편함이 아니라 자연스러움이다. 어느 한쪽이 옳고 틀린 게 아니라, "다를 뿐이다"라는 생각이 생활 속에 녹아 있다.
아들이 고등학교 졸업후 "여자들처럼 한 번 옷을 입어 보고 싶어요"라고 하는 말에 속으로 깜짝 놀란 기억이 있다. 의상과 패션에 관심이 많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작은 고모에게 혹시 안 입는 옷 있으시면 좀 달라고 부탁해 주실 수 있으세요?"라는 말에 다시 한 번 놀랐지만, 그 녀석의 솔직함과 당당함에 기특함 마저 들었다.
'해보고 싶은거 해 보는게 뭐 어때!?'
어른인 나도, "그건 원래 그래야 하는 거야"라고 말하기 전에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라고 한 번 더 생각해보려 한다.
3. 느리지만 정확하게 말하는 감각
“지금 말 안 해도, 말은 언젠가 해야 하니까요”
우리 세대는 속도가 미덕이었다. 빠르게 답하고, 신속히 결정해야 했고, 망설이기라도 하면 ‘우유부단한 사람'으로 몰기도 했다.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않으면 눈치 없거나 태도 나쁘다는 얘기를 듣기 쉬웠다.
그런데 요즘 세대는 다르다.
대화 도중에도 망설이고, 생각을 멈추고, "조금만 생각해 볼게요", "지금은 말하기 어려워요"라고 한다. 불확실한 상황에 조심스럽게 말하는 태도, 그건 소극적인 게 아니라 관계에 대한 책임감이다. 대화의 속도를 늦추더라도, 상처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마음이다.
딸아이에게 무언가 주문을 하면 "네. 정리해서 말씀 드릴께요"라고 한다. '뭘, 아빠가 말하면 옳은 일이니 "네"하고 하면 되지 뭘 더 생각을 해!'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어떤 경우에는 나중에 보면 시킨 대로 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혼 낼 용기가 없다. 논쟁을 하면 내가 무조건 옳다는 보장을 이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른의 생각을 '바른 것'이라고 논리적으로 설득하고 강요할 근거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어른인 나도, 즉답을 강요하지 않고, 망설이는 침묵을 기다릴 수 있는 그런 여유와 품을 배우고 싶다.
이 세상은 점점 더 ‘젊은 감각’의 방식으로 흘러가고 있다. 나쁜 일이 아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남아 있다는 증거고, 진짜 어른은 배우는 걸 멈추지 않는 사람이다.
나보다 젊은 이가 더 많이 아는 세상,
그건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배우는 어른이 되는 기회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