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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에게 길을 묻는 날, 흥븡절

베트남의 건국신화, 동선문화의 상징 청동북과도 연관

by 한정호

2025년 4월 7일(월), 베트남은 연휴다.

음력 4월 10일, ‘흥브엉절’이라고 불리는 이 날은, 단순한 공휴일이 아니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이 날은 자신의 뿌리를 돌아보는 날이고, 국가 정체성을 다시 새기는 하루다.


흥브엉절은 누구를 기리는가?

'흥브엉절(祭雄王, Giỗ Tổ Hùng Vương)'은 베트남 최초의 왕조로 전해지는 흥브엉왕(흥브엉, Hùng Vương)을 기리는 날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자신들의 조상이 바로 이 흥브엉 왕들이라고 믿는다. 흥브엉절의 제사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도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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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븡절 행가.jpg 흥브엉절 행사 장면(푸토성 인터넷 신문 사진 재인용)

흥브엉은 베트남의 건국신화와도 같은 존재다. 전설에 따르면, 락롱꿘(Lạc Long Quân)과 어우꺼(Au Cơ)의 아들들이 흥브엉 왕조를 세웠고, 그 중 장남이 국왕이 되어 짱홍국(고대 베트남의 시초)을 다스렸다고 한다.


지금의 베트남은 바로 그 핏줄과 역사의 연장선에 있다는 자긍심이며, 이것이 흥븡절이 베트남 전역에서 국가적 차원의 제사이자 축제로 이어지는 이유다.

흥븡5.jpg 국가 주석을 포함한 고위급 관료들이 참석한 모습


흥븡절의 중심지는 푸토성(Phú Thọ)이다. 하노이에서 북서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이 지역엔 흥브엉 왕을 기리는 사당이 있다. 명절이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베트남 사람들은 흥브엉 왕의 사당에 모여 민족의 조상에게 절을 올린다.

각 지역에서도 소규모로 제사가 진행된다. 직접 사당까지 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집에서 조상 제사를 지내듯, 향을 피우고 가족이 모여 제사를 지내기도 한다. 이는 조상에 대한 존경과 뿌리에 대한 자긍심이 되새기는 날인 것이다.


푸토 지역에서는 대규모의 전통악기 공연, 민속 무용, 노래, 전통 의상 퍼레이드가 이어진다. 학교나 정부기관에서도 이날을 기념해 다양한 문화 행사를 연다. 아이들에게는 건국신화 및 민족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간이고, 어른들에게는 국가와 혈통을 돌아보는 시간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공휴일이라고 해서 단지 '쉬는 날'로만 보내지 않는다. 흥븡절은 그들에게 있어 민족이라는 공동체 속에서 자신을 다시 바라보는 날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를 되묻는, 조용한 물음이 하루 종일 나라 안에 흐른다.


청동북, 흥브엉의 울림

흥브엉 사당을 방문한 국가 지도자들이 유난히 자주 들르는 곳이 있다. 전시되어 있는 동선문 청동북(Trống đồng Đông Sơn)이 바로 그것이다.

청동북.jpg "흥브엉 사원의 청동북, 국가 보물로 지정된 이 유물은 흥브엉 사원 역사 유적지 내에 위치한 흥브엉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푸토성 인터넷 기사 재인용

이 청동북은 단순한 고대 악기가 아니다. 기원전 7세기~기원후 1세기, 즉 흥브엉 왕조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번성했던 동선문화(문화Đông Sơn)의 대표 유물이다. 정교하게 새겨진 무늬와 장식은 고대 베트남인의 농경 중심 문화, 신앙의식, 천문학 지식까지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 북은 단지 소리를 내는 도구가 아니라, 왕조의 권위를 상징하고, 제사의 시작을 알리는 신성한 도구로 여겨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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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29_133729.jpg 동선 청동북, 호찌민시 역사박물관 소재

지금도 흥브엉절의 제사 의식이 시작될 때, 이 청동북이 천지에 울려 퍼지는 첫 소리를 내며 하늘과 땅, 조상과 후손을 잇는다. 그 북소리는 곧 민족의 정체성과 연속성, 그리고 지금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되새기게 한다.


이 날 푸미시 지역 시민들은 어떻게 하루를 지낼까? 내 눈에 일상과는 다른 모습이 비춰질 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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