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직장에서 의외로 파워 있는 직업 5가지
베트남에서 9년간 직장 생활을 하면서 가장 놀라웠던 건, 겉으로 보이는 직함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권한이 있어 보여도 실제론 아무 힘도 못 쓰는 사람이 있었고, 한편으로는 조용히 실무를 좌지우지하는 사람이 있었다. 눈치 빠른 사람은 누구를 만나야 일이 빨리 풀리는지를 금방 알아챈다. 나 역시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깨달았다.
진짜 실세는 따로 있다.
1. 간부 차량 기사
지방省의 인민위원장과의 회식 자리에 참석한 적이 있다. 상석 바로 옆자리에 앉은 중년 남성을 보고 누구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간단했다. “위원장님의 기사입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죠.” 순간의 놀라움은 사라지고 바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루 종일 함께 다니며 모든 일정을 함께하고, 차량 안에서는 민감한 통화와 사적인 대화까지 듣는다.
운전기사는 단순한 운전자가 아니었다. 그의 운전석은 곧 신뢰와 안전의 자리였다.
2. 통역
통역은 언어를 옮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베트남에 와서 보니, 그 이상이었다. 법인장의 공식 통역을 맡은 직원이 있었다. 겉으로는 조용히 통역만 하지만, 뒤로는 베트남 직원들에게 마치 자신이 법인장인 듯한 존재였다. 심지어 중요한 메시지를 의도적으로 바꿔 전달한 적도 있었다. 알고 보니 그는, 한국인 법인장과 현지 직원 사이에서 실질적인 정보의 흐름을 통제하는 존재였다.
말은 권력이다. 통역은 그 권력을 조용히 즐기고 있었다.
3. 구매팀 직원
신규 직원 채용 과정 중, 구매팀 한 자리에 수백 명이 몰렸다. 심지어 관련 전공도 없는 사람들이 많았다.
베트남 생활을 먼저 해 오신 분께 여쭤보았다. “왜 이렇게 많이 지원하죠?”
돌아온 답은 짧았다. “커미션이 제일 많거든요.”
그 말 한마디에 많은 걸 이해하게 됐다. 거래처와의 접점, 업체 선정, 단가 협상… 구매팀은 회사의 예산을 움직이는 실질적 키였다. 그리고, 그 키는 공식적이지 않은 보상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4. 건물 관리자
예전에 들은 이야기다. 한국의 가수 ‘비’가 베트남 공공 운동장에서 공연을 하기로 했었다. 수천 명의 팬들이 기대하던 무대. 그런데, 공연 당일이 되도록 허가가 떨어지지 않았다. 이유는 단 하나. 건물 관리자가 도장을 찍지 않았기 때문. 결국, 공연은 취소됐다.
법보다, 계약서보다, 관리자의 기분과 판단이 더 중요한 현실.
나도 매장 인테리어를 하면서 건물 관리자 한 명 때문에 두 달 가까이 지연된 경험이 있다. 그는 말 그대로 ‘열쇠를 쥔 사람’이었다.
5. 인허가 브로커
매장에서 식품위생 허가를 받으려고 시도했지만 몇 번이나 반려됐다. 정확한 서류, 성실한 태도, 모두 소용없었다. 결국 브로커에게 맡기니 일주일 만에 해결됐다.
그가 한 말이 잊히지 않는다. “서류는 다 똑같아요. 누구 손에, 어떤 순서로 들어가느냐가 중요하죠.”
형식은 평등해도, 통과는 선택이다. 행정의 비공식 루트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 있었다. 겉으론 ‘수고비’를 받는 사람 같지만, 실제론 시간을 사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하나 더,
‘직함 없는 권력’을 가진 사람은 생각보다 더 많다. 커피를 나르는 비서가 대표의 모든 스케줄을 쥐고 있을 때도 있었고, 주방 아주머니가 직원들의 복지보다 더 많은 영향력을 가질 때도 있었다.
베트남에서는 ‘관계’가 시스템이다. 힘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연결된 곳에 있다.
때로는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있느냐보다, 누가 더 자주 보느냐, 누가 더 많이 들으냐, 누가 더 부드럽게 전달하느냐가 더 중요할 때가 있다. 낯설고 복잡한 환경 속에서, 이런 사람들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적응력' 아닐까?
� 이 이야기를 영상으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fbTBFnOIJH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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