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ạch Dinh (박딘) 방문 후기
두 번의 좌절을 안겨준 붕따우. 그래도 이대로 주저 앉을 수는 없다. 내 옆에 하얗게 몰아치는 파도와 저 멀리 보이는 커다란 배들이 눈 안에 있고, 시원한 바닷바람이 내리쬐는 햇살의 얄미움을 가라앉혀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다시 내게 좌절을 안길지도 모를 세번째의 목적지는 Bạch Dinh (박딘). 이곳은 프랑스 식민시절, 총독의 별장이었다가 이후 제국의 몰락을 상징하는 황제의 유폐지로 사용된 곳이다.
혼바 사원에서 택시로 약 15분을 가야하는 곳이니 걸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전 방문지에서 감동을 받고 사진도 찍고 했다면 신이 나서 더 많은 곳을 볼 수 있겠다는 희망으로 당연히 걸어가는 것을 택했을텐데... 이미 마음은 지쳐 있었다. '오늘은 되는 일이 없는 건가!'
길가에 세워져 있는 관광버스 기사에게 요금을 물어보니 9만동이라고 한다. 버젓이 앞에 미터기가 있는데도 그 가격을 부르는게 의심스럽기도 하고 불쾌하기도 했다. '차라리 바다를 보면서 걷자.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면 되지 뭐'라며 두 말도 없이 도로를 건너와 바닷길을 걷기 시작했다.
조금 걷다보니 유난히 붉게 물든 꽃들로 덮혀진 인도가 보인다. 아이를 안고 준비해온 음식을 먹이는 젊은 아낙네, 그늘 아래 짝을 지어 앉아서 쉬거나, 세상 편한 모습으로 아침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꽃만큼이나 이쁘고 행복해 보인다.
100m 정도도 되지 않는 이 길을 걸으며 카메라 영상에도 반갑게 인사해 주는 사람들을 보면서 힐링이 된 듯 하다. 오늘 붕따우에 온 것 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꽃들로 둘러쌓인 인도를 나와 걷다보니, 아까 9만동을 부른 기사가 다시 내 옆으로 다가와 6만동이며 손가락을 펼쳐 보인다. 그 꽃길이 끝나지만 않았어도 무시하고 걸어갔을텐데... 앞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가는 길. 왼쪽에는 탁 틔인 바다가 계속 나를 쫒고 있었고, 오른쪽에는 이쁘게 단장한 리조트들과 식당들이 눈길을 좌우로 휘둘게 만든다. '아... 지도에서 보았던 그 사찰. 또 사찰,...' 지도를 보면서 이 일대를 걸어가면서 사찰을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곳이 바로 지금 내가 지나고 있는 그 길이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 번 예수상을 만나러 와야겠다. 그 때는 예수상, 혼바 사원도 가보고 이 길을 따라 걸으며 반기는 사찰들을 방문해 보아야겠다. 그리고 마지막엔 이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바다를 보고 힐링하는 여행일정이 만들어졌다. 다음 주엔 반드시 다시 찾아 오리라.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벌써 Bạch Dinh (박딘)의 입구에 도착하였다. 저 언덕위로 하얀 건물이 보인다. 출입구 앞에는 대형 관광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다. 관광버스들이 반가운 것도 처음인 것 같다. 15,000동의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섰다.
해발 고도 약 27m에 위치한 이 곳은 1898년~1902년에 프랑스 신고전주의 양식과 아르누보 장식이 결합된 형태로 최초 프랑스 총독의 휴양 별장용으로 건립되어 사용되었다. 이후 응우옌 황제 ‘타잉 타이(Thành Thái)’의 유배지로 사용된 곳이다. 당시 황제가 프랑스에 반감을 드러냈다는 이유로 폐위되어, 이곳 박딘에서 강제 연금 생활을 한 곳이다.
1층에는 프랑스 시대 유물, 고서와 가구들이 전시되어 있고, 2층에는 타인 타이 황제와 관련된 유품들과 더불어 거주 공간이 재현되어 있다.
사방이 창문으로 개방되어 있어 에어컨이 없어도 정말 시원하고 한적한 곳이다. 앞으로는 탁 틔인 바다가 있고 붕따우 시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이 곳, 총독의 휴양지로는 너무 아름답기만 한 곳이지만, 폐위된 왕의 유폐지로는 너무 가슴 저린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2층을 올라가려 하기 전 한 청년이 좁은 계단을 통해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아 벙커가 여기도 있었나?'
관광 소개에도 나타나지 않은 곳. 호기심이 발동하여 따라 내려갔다. 금방 그 곳의 목적을 이해하게 되었다. 총독과 왕의 식사, 회식 또는 만찬을 준비하는 주방이었다.
한 켠을 자리작고 있는 와인 보관대가 와인을 좋아하는 프랑스 총독의 휴양지였슴을 바로 깨닫게 해 준다.
2층으로 올라오니, 집무실과 접견장 등 거주공간이 전개되어 있다.
20세기 초중반, 프랑스 식민 시절 베트남 상류층 사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전형적인 '문명의 상징'인 축음기와 전화기가 눈길을 끌었다. 축음기와 더불어 이곳의 전화기, 책상, 커튼, 카펫 등은 당시 서구 문물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폐위된 응우옌 왕조의 제10대 황제인 타잉 타이(Thành Thái)는 이 곳에서 1907년부터 1916년까지 약 9년간 가택 연금 상태로 지냈다고 한다. 그는 프랑스 식민 당국에 의해 퇴위당한 후, 이곳에서 감시를 받으며 제한된 생활을 했으며, 1916년, 아들인 전 황제 주이떤(Duy Tân)과 함께 아프리카의 레위니옹 섬으로 유배되었다고 한다.
유폐된 황제는 이 곳 베란다에서 저 넓은 바다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또 아들과 다른 이국 땅으로 유배를 갈 것이라고 생각이라도 했을까? 참 아름다운 전경에 대비되는, 한 인간의 비애를 안고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밖으로 나왔다. 이쁜 정원으로만 보였던 곳에 대포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건물 뒤의 언덕밑에는 대포를 저장해 놓은 창고가 있다. 사실 이 곳도 전장터인 것이다. 하기야 황제의 마음속에는 정말 불같은 전쟁의지가 담겨져 있지 않았을까?
'저 넓기만 하고 상대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바다와 파도를 보면서 프랑스를 위시한 서양세력의 침략을 막아보려는 작은 몸부림의 상징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베트남의 정치 중심에서 벗어난 장소에 건립된 총독의 별장 그것만의 역사 장소라면 아름답고 평화롭기만 해 보일 이 곳이, 이후 제국의 몰락을 상징하는 황제의 유폐지이자, 20세기 베트남의 식민·왕정·현대사가 한데 담긴 공간이라는 점에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기분을 안고 바로 옆에 있는 바리아붕따우 박물관으로 발길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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