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따우 까오다이 사원(Thánh Thất Vũng Tàu)은 공사중!!
여정의 마지막 목적지는 붕따우 까오다이 사원(Thánh Thất Vũng Tàu)이다. 베트남의 민족 신흥종교 사원이다. 사실 호찌민시에 7년을 넘게 거주하면서도 그 존재를 발견하지 못했던 곳이다. 공부를 하면서 안 사실이지만 차이나타운이 있는 5군을 비롯해 몇 곳이 있다고 하는데 사실 내가 살던 푸미흥과는 거리가 멀고 관광명소로도 지명이 되지 않은 관계로 찾아가보려 하지도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엔 붕따우 탐방의 제1 목적지가 여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까오다이교는 1926년 베트남 떠이닌에서 창시된 독특한 민족 종교다. 불교, 도교, 유교, 가톨릭, 이슬람은 물론이고 공자, 노자, 석가, 예수, 심지어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까지도 성인으로 모시는 다종교 융합 신앙이다. 이 종교는 ‘모든 신앙은 결국 하나의 진리로 통한다’는 대도(大道)의 철학을 바탕으로 한다.
사원에 들어서면 정중앙에 자리 잡은 천안(Thiên Nhãn)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이것은 신의 전지전능함과 우주적 통찰을 상징하며, 까오다이 사원 건축에서 핵심적인 심볼이다. 정오 12시, 종소리와 함께 의식이 시작된다. 신도들은 하얀 옷을 입고 줄지어 앉아 기도문을 읊고, 사제들은 파랑, 노랑, 빨강으로 구분된 복장을 입고 천천히 의식의 공간으로 들어선다. 이는 각각 도교, 불교, 유교의 교리를 상징한다. 예식은 의외로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시각적으로 풍성하다. 향을 피우고, 북을 치고, 천천히 나아가는 사제들의 행렬은 마치 동서양 종교의 무언의 조화를 보는 듯하다.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에 벅찬 기대감을 갖고 택시를 타니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사원의 입구에 나를 내려주었다.
사원의 입구를 들어 섰는데 양 옆으로 거주지가 빽빽히 서있다. 바리아의 성당세서도 목격한 장면이라 그리 놀랍지는 않다. 그런데 사원에 점점 가까와지자 불안감이 엄습한다.
'혹시 저건...!'
까오다이 사원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천안(Thiên Nhãn)이 수리를 하는 지, 발판 구조물(비계)로 둘러 쌓여 있다. 사원을 들어가려 정문으로 나아가니 문이 닫혀 있다. 안내문도 없다. 안에서는 공사를 하는 인부들이 분주하게 움직일뿐이다.
다른 때 같으면 그저 발을 돌리고 말았을 것이다. 이것도 경험 덕분인지, 옆에 열려있는 좁은 문을 통해 무작정 들어갔다. 한 쪽에선 인부들이 모여 앉아 쉬고 있었고, 한 편에는 아직도 작업이 한창이다. 몇 몇 분이 나를 쳐다보기는 하셨지만 말을 걸어오진 않았다.
법당도 굳게 문이 닫혀 있었지만 문이 조형물로 뚫린 상태여서 내부를 조금씩 볼 수 있었다.
가운데 문양은 까오다이교의 종교적 철학을 상징하는 것이다. 노랑은 깨달음(불교), 파랑은 자연(도교), 빨강은 윤리(유교)를 상징하는데 그 세 가지가 신의 뜻(道) 안에서 하나로 통합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 노랑(황색)은 불교를 상징하는데 이는 승려의 가사 색상, 즉 출가자의 상징하기 때문이다. 부처님도 황금빛 몸을 지녔다고 표현되며, 인도-중국-베트남을 관통하며 ‘성스러움과 무욕’을 상징한다. 까오다이에서는 불교를 '깨달음의 길(Đạo Giác Ngộ)'로 보고, 그 정수를 자비와 고요함으로 해석하고 있다. 즉 '불교는 자비로 세상을 밝히는 빛이다'이고 황색은 자비의 색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 빨강색은 유교를 상징하는데 까오다이교에서는 유교를 사회 윤리와 인간의 도리를 가르치는 시스템으로 해석한다. 빨강은 충(忠), 예(禮), 인(仁)을 상징하는 색으로, 동아시아 전통에서는 왕조, 권위, 조상 숭배의 색이기도 하다. 특히 베트남의 유교적 전통에서 빨강은 행운과 복의 색이며, 가문, 조상, 제례에 쓰이는 색으로 천자(天子)의 상징색으로 사용된다.
� 파랑색은 도교를 상징하며, 우주의 법칙과 자연의 흐름을 상징한다. 청색은 신비롭고, 고요하고, 물처럼 자유롭고 형체 없는 ‘도(道)’의 색이다. 중국에선 도교를 ‘청의도(靑衣道)’라고 불릴 만큼 파랑/청색은 오래된 상징으로 인식되어진다.
본래 있던 법당은 닫혀 있고, 다른 한켠에선 새 법당을 짓느라 인부들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배사(配師, Phối Sư)라 불리는 지방 사원(Thánh Thất)의 예식 집례자나 교유(敎友, Giáo Hữu)라 불리는 일반 성직자 (지방 신도 교육 및 예배 지도)는 보이지 않았다.
사실 이 사원이 이 도시에 세워졌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롭다. 남중국해와 접한 해변도시, 군사적 요충지였던 붕따우에 까오다이라는 종교의 분소가 있다는 건, 이 종교가 단지 신비한 혼합 종교가 아니라 베트남 현대사 속에서 끊임없이 확장되고 진화해 온 살아있는 신앙체계라는 증거인 듯 하다.
무슨 용기일까? 사원의 구석구석을 돌아보았다. 성직자들이 사는 거처 같은 곳을 발견했다. 한 켠에 모셔져 있는 영정들 속에는 호찌민의 그것도 있었는데 그곳에선 그 영정도 다른 것보다 작은 것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연한 베이지색 승복을 입고 온화한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인물은 바로 까오다이교의 창시자, 응오 민 찐(Ngô Minh Chiêu) 또는 교주 레반쭝(Lê Văn Trung)이라고 한다.
나는 이 사원에서 오늘 하루의 좌절과 방황을 조용히 내려놓을 수 있었다. 우연히 닫힌 문들, 열리지 않은 바닷길, 마침내 다다른 신비로운 사원마저도 나를 향해 파업을 진행했지만, 그 속에서 붕따우의 바다 기운과 다음주에 재도전을 위한 희망을 앉고 푸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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