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베트남 식당에서 한국 국회의원을 만나다

식초 한 방울에 묻어난 책임 회피의 설레발

by 한정호

오늘도 평소처럼 매장을 돌고 있는데, 한 고객이 나를 조용히 부른다. "사장님, 이 식초 좀 이상한 거 같아요. 냄새도 그렇고, 뭔가 기름 같은 게 둥둥 떠 있어요."

살짝 냄새를 맡아보니 식초 냄새는 맞다. 하지만 고객이 굳이 이상하다고 하니 혹시 몰라 다른 테이블의 식초를 가져다 드렸다. 그런데 그것도 비슷하다. 결국 내가 직접 입에 넣어보았다. ...으응? 이건 식초에 식용유가 들어간 느낌이 확실하다. 그제야 감이 온다. 뭔가 잘못 넣은 거구나.


직원을 불러 "이거 식초 아닌 것 같으니 전부 바꾸라"고 했더니, 내 말을 듣자마자 눈빛이 바뀐다. 마치 뭔가 억울하다는 듯, “저는 식초 넣은 게 맞아요. 누가 바꿔치기 한 거 아닐까요?”라며 도리어 나에게 따지듯이 말한다.


사실, 지금은 누가 잘못했는지를 따질 상황이 아니다. 문제가 생겼으면, 우선 그걸 바로잡고 고객께 사과를 드리는 게 먼저다. 그래서 주방에 냉면 다시 만들라고 주문하고, 모든 테이블 식초를 교체하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이 친구, 그냥 물러나지를 않는다.

“진짜로 전 식초만 넣었어요. 저 말고 다른 사람이 넣은 거 아닐까요?”라며 다른 직원들에게 “혹시 너 넣었냐?” 하고 하나하나 묻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라, 이 사람 어디서 많이 본 태도인데!'

맞다. 바로 한국 국회의원들의 전매특허 같은 그 자세. 일 터지면 “나는 그런 적 없다” “알지도 못하는 일”이라며 언론 탓, 남 탓 하다가 정황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하면 “그런 말 한 적 없다”며 말 바꾸기. 급기야는 “정치 생명을 걸겠다”던 사람이 정작 사실로 확인되면 딴청 피우고 막무가내.


정말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책임은 없다고 끝까지 주장하지만,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는 없고 자기 방어만 본능처럼 나오는 그 태도.

직원과 국회의원, 전혀 다른 직업인데도 위기 앞에서의 반응은 어쩌면 그렇게도 닮았는지. 내가 국회에 간 것도 아니고, 국회의원이 식당에 온 것도 아닌데 오늘 하루, 나는 베트남에서 한국 국회의원을 만난 듯 하다.


� 유튜브 채널 [소통하며 공감하는 베트남 이야기]에 방문해보세요!

베트남의 현실, 문화, 사람들 이야기를 계속 전하고 있어요.

� https://www.youtube.com/@%ED%95%9C%EC%A0%95%ED%98%B8-v8r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하늘을 나는 독수리는 까마귀를 상대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