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 해방 50년에 생각하다(Ⅱ)

냉전 구도 속의 월남전 : 대리전인가, 내전인가?

by 한정호

베트남 전쟁은 흔히 '냉전의 대리전'이라 불린다. 하지만 그 말 한마디로 이 전쟁을 다 설명할 수 있을까?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단순한 대리전도, 단순한 내전도 아닌, '민족 통일'이라는 오래된 꿈을 위한 싸움이었다. 그리고 그 민족 통일을 이루기 위해, 외부 세계의 거대한 힘을 이용하거나, 견뎌내야 했던 싸움이기도 했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 구도 : "작은 나라들의 전쟁"이라는 그림자

1950년대, 한반도에서 총성이 멎자, 세계는 베트남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미국과 소련, 그리고 중국.

월남전은 이 거대한 두 축이 충돌한 또 다른 전장이 되었다. 미국은 '도미노 이론'을 앞세워 베트남에 개입했다. 한 나라가 공산화되면 주변 국가들도 줄줄이 넘어간다는 논리였다. 반면 북베트남은 중국과 소련의 군사 및 경제 지원을 등에 업고 남진을 계속했다. 전쟁터는 사이공과 하노이였지만, 명령은 워싱턴과 모스크바, 베이징에서도 떨어졌다. 이 구도만 놓고 본다면, 베트남 전쟁은 확실히 '대리전'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베트남 내부에서는, 베트남 사람들의 눈에 이 전쟁은 외세를 대신한 싸움이 아니었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부터 이어져 온 독립운동의 연장선. 남과 북 모두, "진정한 베트남"을 건설하려는 자기만의 명분을 가졌다.

북부는 호찌민의 지도 아래 ‘민족 해방’을 외쳤고, 남부는 냉전 체제 속에서도 독자적인 정치 질서를 만들려 했다. 비록 외부의 지원을 받았지만, 그 싸움은 철저히 베트남 사람들의 운명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베트남 전쟁은 대리전이면서도, 동시에 내전이었다. 외부 세력이 개입했지만, 그 안에는 베트남 스스로의 선택과 싸움이 엄연히 존재했던 것이다. 단순화할 수 없는 복합의 전쟁, 냉전은 이 전쟁을 국제화시켰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의 뿌리는 그보다 깊었다.

외부 세계가 철수한 뒤에도, 베트남은 내부의 갈등을 해결해야 했다. 이념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 달랐던 남과 북이 하나의 국가로 살아가는 문제를 스스로 풀어야 했다. 그 싸움은 총성이 멎은 뒤에도 오래도록 계속되었다.


다시 묻는다, 대리전인가, 내전인가? 어쩌면 답은 하나가 아닐지도 모른다. 월남전은 '냉전의 그림자'이면서 '베트남 사람들의 내면 전쟁'이었던 것이다. 세계의 힘과, 개인의 신념. 국제 정치와, 가족을 지키려는 마음. 그 모든 것이 얽히고 뒤섞여 만들어진 비극이자, 희망의 씨앗이었다.


다음 편에서는 「‘자유 월남’이라는 신화와 현실」을 살펴본다. 외부에서는 '자유의 보루'라 불렸던 남베트남. 그곳은 정말 자유로웠을까?


� 더 많은 베트남과 관련된 영상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소통하며 공감하는 베트남 이야기 - YouTube

베트남의 현실, 문화, 사람들 이야기를 선사합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베트남에서 만난 붉은 군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