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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향을 피우면 귀신을 부른다

베트남 실생활에서 마주치는 미신 7가지(3)

by 한정호

왜 낮에 향을 피우면 안 된다고 믿을까?


1. 향은 신령과 영혼을 부르는 ‘의식의 매개체’

베트남에서는 향(베트남어로 "nhang")을 단순한 냄새나 소독 목적이 아니라, 영적인 존재를 부르는 신호로 여긴다. 또한 향 연기는 영혼이 오가는 길, 즉 조상신이 강림하는 다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향을 피우는 행위는 “부릅니다”, “이 자리에 와 주세요”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2. 왜 ‘해가 떠 있는 시간’엔 향을 피우면 안 될까?

가. 음양론에 따른 시간 구분

베트남 전통 사고에서는 하루를 양기와 음기로 나눈다. 해가 떠 있는 낮 시간대는 양기(생명, 활동, 인간의 시간)의 영역이다. 반면 향은 음(신령, 죽은 자, 저승)을 불러오는 의식물이기 때문에, 낮에 향을 피우는 것은 음과 양을 혼동시키고 균형을 깨뜨리는 행위라고 보는 것이다.

나. 영혼이 혼동되거나 불청객 귀신이 달려들 수 있다고 생각

제사나 기일이 아닌 때, 아무 이유 없이 향을 피우면 '누군가 나를 부르는구나'라고 느끼고 유령이나 떠도는 혼백이 찾아온다고 여긴다. 특히 낮에는 조상신보다 길 가던 ‘부정한 귀신’이 더 쉽게 달라붙는다고 생각한다.


3. 실생활에서는 어떻게 지켜지고 있을까?

가. 조상 기일이나 제사에 향을 피우는 것이 가능하며, 보통 오전~정오 무렵에 의식을 진행한다.

나. 보통 절이나 사원 방문하면 향을 피우는 것이 가능하나, 향 피우는 공간이 따로 있다.

다. 향 냄새가 좋아서 방 안에서 향을 피우는 것은 금기시하고 있으며,

특히 낮 시간엔 더욱 꺼려한다.

라. 퇴마, 점집, 무속 의식으로는 허용되며, 이 때는 오히려 낮에도 향을 피운다.


노인 세대는 특히 더 엄격하며, 어떤 어르신들은 집에서 아무 때나 향을 피우는 것 자체를 불길하게 여기기도 한다. 손자가 실수로 향을 피우면 “누구를 부른 거냐?" "왜 부정하게 이런 걸 하냐?”며 화를 내거나 혼을 내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베트남 가정에서는 향을 피울 땐 반드시 명확한 의도와 시간대를 정해서 한다.


4. 베트남 일반 사찰(특히 남부지역)에서는 향을 잘 피우지 않는데 그것도 이 미신 때문일까?

베트남 불교는 대체로 대승 불교(Mahayana)이지만, 남부지방을 중심으로는 상좌부 불교(Theravāda)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상좌부 불교는 개인 수행과 명상을 중심으로 하며, 의식을 최소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종파에서는 향을 ‘부처님께 바치는 예경 도구’로만 사용하고 있으며, 향을 피우는 행위 자체에 신비적 의미나 영적 매개기능을 부여하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베트남 일반 사찰에서는 명상 중심의 단정한 공간이 많고, 향도 정해진 예불 시간 외에는 거의 피우지 않는다.

20181019_124109.jpg 사찰 야외 불상전에도 향을 피우지 않고 있다
20241002_055549.jpg 산사의 불상 전경
KakaoTalk_20240221_133011962_09.jpg 비구니 선원 전경
20241002_063023.jpg 관세음 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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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2_053257.jpg 사찰내 향로에도 향을 피우지 않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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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0_072815_HDR.jpg 신년 제사를 지내는 모습 (하일랜드 커피숍)
20240210_072114_HDR.jpg 제사상에도 향을 피우지 않음

한편 베트남에 있는 화교계 사찰이나 민간신앙과 도교가 혼합된 사당(예: 티엔하우 사원, 까오다이교 사원)에서는 향이 ‘신령을 부르는 수단’, 또는 기복의 매개체 역할을 하기에 사시사철 향 연기가 자욱할 정도로 많이 피우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들은 조상신, 도시신(城隍), 재물신(財神) 같은 다양한 신격에게 향을 바치며, 기원, 치유, 재복을 바라는 실천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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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29_094011.jpg 베트남내 화교계 사찰 내외부 전경


이렇듯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이라 해도 베트남과 중국이 향을 사용하는 태도는 상당히 다르다. 중국에서는 향이 매우 적극적이고 일상적인 신앙 행위로 기능한다. 도교와 불교, 조상 숭배가 강하게 결합된 중국의 민간신앙 전통 속에서 향은 ‘신령과 소통하는 도구’이자 ‘복을 비는 주문’처럼 여겨진다. 이 때문에 사당, 묘지, 거리의 제단에서도 향을 피우는 행위가 거리낌 없이 이루어진다.


반면, 베트남에서는 향을 피우는 행위 자체에 신중함과 절제가 깃들어 있다. 함부로 향을 피우는 것은 조상을 무분별하게 부르는 행위, 혹은 떠도는 귀신을 불러들이는 위험한 짓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래서 반드시 명확한 목적과 정해진 시간, 그리고 정숙한 마음가짐이 있어야만 향을 피울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결국, 향을 어떻게, 언제, 왜 피우느냐에 대한 태도는 그 사회가 영혼과 신령, 죽음과 조상, 신성과 일상 사이의 경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규율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 코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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