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다른 곳에선 말보다 ‘기준’이 중요하다
"밴드 1박스만 사와줘!"
–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하여
어제 면도날을 잘못 건드려 손가락이 살짝 베었다. 피가 맺힐 정도는 아니지만, 살이 벌어질 수도 있고 잘못 건드려 또 피가 터질까봐 계속 밴드를 갈아 붙이고 있었다. 오늘도 자꾸 물이 손에 닿는 바람에 밴드가 다시 필요했다.
마침 단체손님도 돌아 가셔서 직원을 불렀다.
손가락을 보여주며 “밴드 1박스만 사와줘.”라고 부탁을 했다. 오늘따라 자전거를 가져 오지 않은 관계로 걸어 갔다오기엔 거리가 좀 있고 아직 다른 손님들도 자리에 계셨기 때문에 직원이 오토바이를 타고 후딱 갔다오면 되리라는 생각이었다.
작고 얇은 밴드가 10개, 혹은 20개쯤 들어 있는 조그만 상자. 마트에서도 팔고, 편의점에도 흔한 그 사이즈. 일부러 20개여도 괜찮다고 말해 주었다. 나머지는 매장에 놔 두었다가 다치는 사람이 있으면 같이 쓰면 될 것이기 때문에.
10분쯤 지났을까? 직원이 돌아왔고, 손에 들린 건 100매짜리 대형 밴드 박스였다. 병원 납품용이라 해도 믿을 법한, 큼지막한 하얀 상자.
그걸 보자마자 입에서 나올 뻔한 말을 꾹 삼켰다.
'이걸 왜...?'
순간 화가 나, 직원에게 "우리들 매일 조금씩 다쳐야 되겠는데..! 약국 차릴래?" 라고 빈정거리는 투로 말을 던졌다.
직원은 그저 웃을 뿐이다. '니가 시킨대로 했는데 뭘!...'
곧 알겠다 싶었다. 나는 ‘생각’을 주문한 게 잘못이었다. 직원은 그저 내가 말한 대로만 움직였을 뿐이다.
정말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
베트남에서 오랫동안 직원들과 일하며 살아왔다. 그 과정에서 종종 마주치는 장면들, 그리고 그 장면들이 불러오는 질문이 있다.
'이건 왜 이렇게 했지?'
'조금만 더 생각했으면 다르게 하지 않았을까?'
'정말 생각을 하는 것을 포기한 사람들일까?'
'아니면 반항하는 걸까?'
한편 곧 드는 다른 질문도 있다.
'그건, 내 기준의 생각이지 않았을까?'
말은 생각을 대신하지 않는다. 지시는 명확해야 한다.
‘1박스’라고 하면, 약국 직원도, 매장 직원도, 각자의 기준에서 ‘그냥 한 박스’를 고를 뿐이다. 작고 얇은 10매 들이든, 대형 100매 들이든 그건 내가 정해 주지 않으면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얼마나 '추상적으로' 말하고 있을까?
베트남에서 함께 일하며 가장 많이 배운 건 '말의 추상성'이 오해를 낳는다는 아주 단순한 진리였다.
한국에서는 ‘대충 알아듣는’ 문화가 통한다. 비슷한 교육, 사회 규범, 공감 코드가 있으니까.
하지만 이곳에서는 다르다. 말한 그대로가 곧 행동의 기준이다. 해석도 없고, 추측도 없다. 그냥 들은 그대로, 정확히 그 대로만.
또 밴드를 더 사야할 일이 있을까? 만약 그렇게 되면 다음엔 이렇게 말해야지.
“밴드 한 박스만 사와. 10개에서 20개 정도 들은 작은 걸로.” 또는 “딱 한 두 개만 필요하니까, 크게 안 사도 돼.”
말은 쉽지만, 생각보다 이렇게 말하는 게 어렵다. 우린 너무 자주, ‘알아서 잘 하겠지’라는 말 없는 신뢰를 기반으로 소통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게 통하지 않는 곳에선, 그런 신뢰는 책임 전가가 된다.
'그래. 내 잘못이지'
‘밴드 1박스’라는 말 안에 너무 많은 걸 기대해버렸구나.
그리고 그걸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 안에서 삭여야 하는 이 마음,
‘이건 정말 내가 낯선 나라에서, 낯선 사람들과 살아간다는 증거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