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통가옥은 어떻게 사생활을 지켰을까?

모두가 보는 구조 속, 아무도 보지 않는 삶

by 한정호

유튜브에서 베트남 북부 전통 가옥을 소개하는 영상을 보다가 문득 멈춰 섰다. 화면 속 'Nhà ba gian(냐 바 지안)' – 말 그대로 '세 칸 집' 구조의 목조 건물은 정면에서 보면 단순하면서도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본 순간, 머릿속에 질문이 툭 튀어나왔다.


'이렇게 탁 트인 구조에서, 사생활은 어떻게 보장하지?'

'3세대가 같이 산다면 두 세대는 부부일 텐데, 그럼 성생활은 어떻게?'

'그래서 베트남이 성적으로 개방적인 문화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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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북부 전통 가옥 외부 및 내부 전경 [ Vin wonder 웹사이트 사진 인용 ]

한옥에 익숙한 한국인의 눈에는 쉽게 납득되지 않는 구조다. 칸마다 문이 있지만 대부분은 벽 없이 통하고, 마치 하나의 큰 거실 안에 여러 가족이 살아가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이 구조 속에서도 베트남 사람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거리’를 만들었다. 그건 물리적인 벽이 아닌, 태도와 예의, 그리고 삶의 규칙이 있는 것이다.


1. ‘보이지 않게’라는 지혜 : 발(베)과 커튼의 활용

가장 널리 쓰인 방식은 'Rèm'(렘)이라 불리는 커튼이다. 즉 얇은 천을 천장에서 내려 임시로 공간을 나누는 방식으로, 취침이나 옷 갈아입기, 병간호, 신혼 첫날밤 같은 민감한 순간엔 자연스럽게 커튼이 내려왔다.

또 하나, ‘Màn’(만)이라 불리는 모기장을 침상 위에 사방으로 설치되면서 동시에 시선을 차단하는 기능을 했다. 이 커튼과 모기장은 단순히 ‘가리기 위한 도구’를 넘어, 예의를 표현하고, 말을 하지 않아도 ‘존중’의 신호를 보내는 방식이었다.

낮엔 걷고, 밤엔 내린다. 보여야 할 때 보여주고, 닫아야 할 때 닫는 구조이다.


2. 말하지 않음으로 말하기 – 행동의 규칙

비록 구조는 열려 있지만, 사생활은 '소리와 동작의 배려'로 지켜졌다. 속삭이듯 말하고, 누군가 쉬고 있다면 소리 내어 움직이지 않는다. 문을 ‘똑똑’ 두드리기보다 조용히 앞에 멈춰서 존재를 알린다.

프라이버시란 건 벽이 아니라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걸, 이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듯 하다.


3. 공간이 아닌 시간의 분리

베트남의 전통 농촌은 바쁘다. 해 뜨면 일터로 나가고, 해 지면 돌아온다. 집은 잠을 자고, 식사를 하고, 조상에게 제를 올리는 장소였지, 하루 종일 붙어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즉, 사생활은 공간을 나누기보다 ‘시간을 분리함’으로 해결됐다. 한 공간을 쓰더라도 서로의 시간이 겹치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았다.


4. 공간에도 위계가 있다

가장 중앙에 가까운 방은 가장의 공간이다. 아이들은 양쪽 끝방이나, 때론 다락 같은 주변 공간에서 지냈다.

이러한 암묵적인 공간의 위계는 자연스럽게 서로의 경계를 만들었다. 누가 어디서 자고, 어디까지 들어가야 하는지를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회였다.


5. 부엌은 여성의 쉼터였다

부엌은 집과 떨어진 별채에 있는 경우가 많았고, 이 공간은 여성들만의 작은 세계였다. 조용히 혼자 생각하거나, 옷을 고쳐 입고, 심지어 잠시 눈을 붙이기도 했던 그곳은 현대식으로 말하자면 여성의 ‘개인실’ 같은 역할을 했다.


6. 혼례 후, 신혼 공간은 특별하게

결혼한 새 커플에게는 한쪽 방이 우선 배정됐다. 필요시 임시 칸막이를 세우기도 했고, 그 방에 대해서는 다른 가족이 절대로 함부로 들어가지 않는 합의가 있었다.

이 역시 벽이 아니라 사회적 규범이 보호한 프라이버시였다.


7. 열려 있으되, 함부로 보지 않는다

이 모든 걸 정리하면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베트남 전통가옥은 “열려 있으나, 함부로 보지 않는다”는 철학 위에 지어졌다.

보이지만 보지 않고, 말하지 않아도 알며, 같은 공간에서 따로 살아가는 법을 알았던 것이다.


그들의 삶은 물리적 구조보다, 사람 간의 거리와 예의가 중심이 된 문화였다. 베트남의 생활철학에는 “개방된 공간 안에서 조심스럽게 살아가기”라는 개념이 있다. 이건 단순히 공간적 구조보다, 사람 간의 거리 유지와 마음가짐에서 비롯된 문화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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