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북부 전통가옥이 만들어낸 침상 문화의 배경
베트남 북부의 전통가옥을 처음 보았을 때, 나도 모르게 한참을 들여다보게 됐다. 고요한 흙마당 위에 나지막한 지붕이 얹힌 나무 집, 정면엔 문이 세 개.,바로 북부 지역을 대표하는 전통 주택, ‘Nhà ba gian(냐 바 지안)’이다.
그런데 내부를 들여다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 바닥이 없네…?'
'그럼 바닥에 앉지도 눕지도 못하는 건가?'
'밤엔 어디서 자지?'
한국의 온돌문화에 익숙한 내게, 바닥이 곧 집의 중심이다. 그런데 베트남 북부의 전통가옥에서는 우리의 선조들이 앉고, 눕고, 식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던 그 '바닥'이 사라진 공간이 낯설게 느껴졌다.
바로 그 낯섦 속에서, 베트남만의 독특한 침상 문화가 꽃피우기 시작했다.
흙 위에 세운 집, 침대를 부르다
북부 베트남은 고산 지대와 평야가 섞여 있는 지역이지만, 전통가옥 대부분은 지면과 맞닿은 구조로 지어진다. 기단도 없고, 마루도 없고, 방바닥도 따로 없다.
북부 베트남의 전통가옥은 대부분 흙바닥이 기본이다. 마루도 없고, 온돌도 없고, 매끈한 장판도 없다. 흙바닥에선 눕기도, 앉기도, 오래 머무르기도 불편하다. 또한 그런 구조에서 직접 바닥에 앉거나 눕는 건 추위, 습기, 벌레, 먼지 등 모든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바닥 위에 띄운 공간’, 즉 ‘침상(침대)’의 필요성이 생겼다.
침상이라는 일상의 중심 : ‘Giường(즈엉)’
베트남 북부의 전통 침상은 단순한 잠자리 그 이상이었다. 가족이 모여 앉고, 식사를 하고, 병을 돌보고, 심지어 손님을 맞이하기도 했다. 바로 이 ‘Giường’이 일상과 의례의 경계선이었던 셈이다.
‘Giường tre’ – 대나무를 엮어 만든 시원하고 통풍 좋은 침상
‘Giường gỗ’ – 목재로 짜여져 튼튼하고 위엄 있는 가장의 침상
‘Chiếu’ – 그 위에 까는 왕골 자리, 여름엔 시원하고 관리도 쉬웠다
한마디로 말해, 침상은 북부 베트남 사람들의 ‘작은 무대’였다.
겨울이 있는 나라, 그래서 침대
많은 사람들이 베트남을 ‘더운 나라’로만 기억하지만, 사실 북부지역은 사계절이 존재하고 겨울엔 제법 쌀쌀하거나 춥다.
따라서 흙바닥 위에서 자는 건 건강을 해치는 일로 여겨졌고, 그래서 바닥에서 30~40cm 띄운 침상을 사용하였고 이것이 추위로부터의 보호막 역할을 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침상에서 자고, 어르신들은 자신의 침상을 따로 마련해 드렸고, 신혼부부에겐 새 침상과 모기장, 그리고 커튼이 주어진다.
이 모든 구조가 자연스럽게 ‘침상 중심의 삶’을 형성했다.
침상은 단지 잠을 자는 곳이 아니었다. 앉아서 밥을 먹고, 병자를 간호하고, 손님을 맞이하고, 아이들과 장난을 치는 일상의 중심이다. 그 위에 왕골자리(chiếu)를 깔고, 모기장을 두르고, 때로는 그 위에서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했다.
바닥은 흙으로 남겨두고, 삶은 그 위에 띄워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조용하고 단정한 하루가 이어졌다. 벽이 없고, 큰 방(?)이 하나뿐인 구조 안에서 그들의 ‘프라이버시’와 ‘질서’는 바로 이 침상 위에서 시작되었다.
지금도 이어지는 문화
오늘날 북부의 도시 사람들조차 침대 없이 생활하기를 불편해한다. 침대는 단순히 잠자리가 아니라, 습기와 추위를 피하는 생활 인프라로 자리잡았다. 그래서 남부 지역보다 더 두꺼운 매트리스와 전기장판, 모기장 사용률이 높다. 게다가 많은 전통가옥이나 농촌에서는 여전히 ‘침상 + 자리 깔개’ 조합이 보편적이다.
바닥이 없는 집, 그래서 침대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 침대는 단순한 가구가 아니었다. 삶을 띄우고, 가족을 모으고, 계절을 버티는 '하나의 ‘무대’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