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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전 상서

나의 독일어 시작을 함께 해 주신 도 교수님께

by 프로이데 전주현

메일을 드리고서 답장이 없어 연이 끊어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간의 사연들과 감정을 담고 또 담은 편지를 오늘 밤 덜컥 받아 들고선 한동안 울었답니다.

초심을 떠올리게 해주는 순간들은 제 삶의 원동력이기에, 이를 잊지 않기 위해 뭐든 기록해 보는 습관을 들인지도 꽤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니 그 순간들 속엔 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로부터 어쩜 그렇게 매번 많은 가르침을 받았었던 걸까요. 또 그들은 강의실 안에서나 밖에서나 어찌 그리 제게 다정했던 걸까요.

배움의 길에는 도착지라는 끝이 없고 마치 바다 위 표류선과 같은 막막함만이 가득할 때가 참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그들과 함께 힘껏 물장구를 쳤습니다. 숨은 최소한으로 쉬면서 발장구를 계속했죠. 그러다 또 어느 날은 수달처럼 힘을 쭉 빼고서 배를 하늘로 향하게 한 채 배움의 물결에 나를 온전히 내놓아버리기도 하였지요. 물과의 잦은 마찰로 몸이 퉁퉁 붓더라도 그렇게 바다의 일부로 지냄이 기뻤습니다 정말.

그들 중 스승이란 이름으로 불릴 사람들이 제겐 많지 않습니다. 때문에 사제 간의 고충을 털어놓는 이들을 향해 '감사한 줄 알아라, ' 하고서 몇 번을 속삭였지요. 그때 차라리 손에 꼽히는 스승들에게 안부 인사를 했더라면 어땠을까요. 오만한 제자를 용서하세요.

오늘 주신 답장 덕분에 내년에 하고 싶은 일이 생겼습니다. 벚꽃이 만개할 무렵, 그간 녹슨 제 독일어에 관한 반성문과 함께, 얼굴을 뵙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교수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이다 (시 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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